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매화를 아시나요?
“안 된다 이놈들아! 전하 전하!!! 아흑... 아흐흐흑”
1457년 10월 24일. 영월 관풍헌의 하늘은 잔인할 만큼 시리도록 푸르렀다.
뜨거운 오후의 햇살이 마당에 가득 찼을 때,
한양에서 온 금부의 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마당에 가마니를 깔고 소반을 놓은 후 그릇에 사약을 부었다.
“노산군은 사약을 받들라.”
금부도사 왕방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지만, 이내 닫힌 방문을 향해 엎드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비통한 울음을 토해냈다.
“전하, 전하...으흑!!”
나의 주군, 열일곱 전하께서는 어린 몸으로 마지막 위엄을 쥐어짜고 계셨다.
떨리는 어깨를 애써 다잡으며, 전하께서는 엎드린 도사를 향해 겨우 입을 떼셨다.
“그대도 시키는 일을 할 뿐이지 않나. 운명이 이리 흐르는 것을 누굴 탓하겠나.”
갈라지는 목소리 끝에 매달린 그 가련한 배려에 도사는 바닥을 치며 통곡했고, 나도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왕방연이 계속 주저하자, 출세에 눈이 먼 자가 앞장섰다.
감히 전하를 모시던 자가 거침없이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벽에 걸린 활을 낚아채더니, 활줄에 노끈을 이어 전하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는 창밖으로 넘어가 그 끈을 무자비하게 잡아당겼다.
“안 돼! 이놈아! 놓아라!”
내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금군들의 발길질에 밀려 흙바닥을 굴렀다.
뒤틀린 문틈 사이로 나는 똑똑히 보았다.
활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마다 전하의 고운 목이 꺾이고, 맑았던 눈동자에 붉은 핏발이 번져가는 것을.
조선의 유일한 적통이었던 어린 왕의 숨결은 그렇게 비정한 활줄 끝에서 끊어졌다.
전하께서 승하하시자마자, 노끈을 버리고 마당으로 걸어 나오던 그 자는 돌연 피를 토하며 죽었다.
저녁 노을이 강물을 붉게 물들일 즈음, 전하의 옥체는 가마니에 싸여 차디찬 동강으로 내던져졌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리라!”
살기어린 협박이 강변의 적막을 갈기갈기 찢으며 메아리쳤고, 금군들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자취를 감췄다.
홀로 남은 나는 강물로 뛰어들었지만, 이미 깊은 곳으로 흘러간 전하의 시신은 손에 닿지 않았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었다. 가라앉아야 할 시신이 가라앉지 않고,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강 한가운데를 맴돌고 있었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그때, 등 뒤에서 낯익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영월의 호장 엄흥도와 그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은 지체없이 차가운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살을 헤치고 전하의 시신을 안아 든 엄흥도의 눈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엄흥도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전하의 옥체를 등에 업고 어둠이 짙게 깔린 숲속으로 몸을 숨길 무렵, 내 마음속 깊이 갈무리해 두었던 마지막 소임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하를 이대로 보내면 안돼. 이승의 모진 인연을 끊고 떠나시게 해 드려야 해.’
나는 미친 듯이 관풍헌 방으로 뛰어들어가 장롱 깊숙이 숨겨둔 전하의 곤룡포를 붉은 보자기에 싸서 가슴에 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눈물이 앞을 가렸으나, 전하의 체취가 남은 이 옷자락만이 전하의 혼백을 불러올 유일한 길임을 알기에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길,
가시덤불에 살점이 긁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심장을 옥죄는 비통함에 비하면 몸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곡괭이 소리가 들려 왔다.
엄흥도가 전하의 옥체를 내려놓은 곳은 동을지산의 어느 고요한 자락이었다.
찬바람이 뼈를 깎는 늦가을 산속이었지만, 기적처럼 따스한 빛이 머문 땅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노루가 머물다 인기척에 놀라 사라진 그 자리는 서리가 걷히고 보드라운 흙이 드러나 있었다. 엄흥도는 그 작고 따뜻한 땅을 보며 꺽꺽거리는 울음을 삼켰다.
가마니에 싸여 차가운 흙바닥에 닿는 전하의 옥체를 보며, 나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에 몸을 떨었다. 조선의 주인이셨던 분이 그토록 비좁고 비통한 땅 속으로 서둘러 묻히고 계셨다.
봉분조차 쌓지 못하는 평토장(平土葬).
행여 금군들이 찾아내 전하의 시신을 훼손할까 두려워, 우리는 흙을 덮고 그 위에 낙엽을 뿌려 흔적을 지웠다.
엄흥도가 거친 손으로 땀을 닦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항아님, 이제 떠나야 합니다. 저희 가족은 이 길로 문경새재를 넘어 깊은 산골로 숨어들 것입니다. 항아님도 어서 피신하시지요.”
나는 고개를 젓고 가슴에 품고 있던 붉은 보자기를 내밀며 울먹였다.
“호장 어른, 부탁이 있습니다. 이것을 들고 계룡산 동학사로 가십시오. 그곳에 설잠이라 불리는 스님이 계실 것입니다.”
엄흥도가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자, 나는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인연을 꺼내어 놓았다.
“설잠 스님은, 일찍이 세종대왕께서 아끼셨던 천재이자 억울하게 돌아가신 제 아버지와 깊은 교분을 나누셨던 매월당 김시습 선생님입니다. 일전에 그분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계룡산에 은거하고 계신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시습'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엄흥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대 최고의 수재이자 어린 왕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세상을 등진 그의 이름은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영월 관아의 말단 호장인 그에게도 전설처럼 익숙한 것이었다.
나는 엄흥도의 손을 꼭 쥐며 간절히 말을 이었다.
“설잠 스님께 이 용포를 전하고, 전하의 혼백이라도 달랠 수 있게 초혼제를 올려달라 간곡히 청해주십시오. 그분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 간곡한 부탁에 엄흥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손으로 보자기를 받들었다.
“그러면 항아님도 함께 가시지요. 어찌 이곳에 홀로 남으려 하십니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서쪽 절벽을 바라보았다.
관풍헌 마당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그 벼랑 끝, 꽃이 지듯 생을 던지기에 가장 적막하고도 고요한 곳이었다.
“저는 떠날 수 없습니다. 홀로 잠드신 전하 곁에 머무르겠습니다. 서두르십시오. 동이 트기 전에 영월을 벗어나야 합니다.”
엄흥도는 내 결연한 눈빛을 읽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하를 향해 마지막 절을 올리고 발걸음을 돌려 사라졌다.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나는 무덤가에 주저앉아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고 나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하를 덮은 흙의 냉기가 치맛자락을 타고 심장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홀린 듯 서쪽을 향해 걸었다.
동강의 물줄기가 굽이쳐 돌아가며 깎아지른 절벽을 빚어낸 낙화암이 달빛 아래 나타났다.
절벽 끝에 앉으니 차가운 강바람이 머리카락을 할퀴고 지나갔다.
하늘에는 시리도록 하얀 달이 떠 있었다.
달빛이 강물에 부서지는 모양새가 마치 하얀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았다.
전하에 대한 그리움, 그 분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스러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서러움이 복받쳐 나는 마지막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물이 말라붙은 뺨 위로 서늘한 밤공기가 스쳤다.
문득,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까마득한 옛 기억들이 달빛을 타고 하나둘 살아나기 시작했다.
* * * * *
나의 아버지는 집현전의 학사셨다.
비록 관직은 높지 않았으나, 학식과 문재만큼은 누구보다 빛나셨다.
하지만 그 빛이 너무 밝았던 탓일까.
아버지는 동료 학사들의 시기와 질투라는 그림자에 갇히고 말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쓰지도 않은 글을 빌미로 아버지를 모함했고,
애석하게도 성군이라 불리던 왕조차 그들의 간교한 혀에 속아 아버지를 외면하셨다.
유약한 선비였던 아버지는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두셨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마저 허망하게 뒤를 따르셨다. 그 때 내 나이 겨우 열둘이었다.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 집안에서, 갈 곳을 몰라 넋을 놓고 앉아 있던 나를 찾아온 이는 아버지와 친분이 깊던 늙은 내시였다.
“네 총명함이 아까우니, 차라리 궁궐의 깊은 곳으로 숨어들거라. 그곳이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안전한 법이니라.”
그의 도움으로 나는 과거를 묻은 채 어린 궁녀가 되었다.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궐 안의 모진 풍파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는 비록 몸은 낮추었으되 '깨어 있으라'던 아버님의 유훈만은 한시도 잊지 않았다.
남들이 잠든 밤이면 몰래 서책을 펼쳐 정세를 살폈고, 맡은 소임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의 정성이 닿았는지 나는 제조상궁의 눈에 들었고, 마침내 어린 세자 저하를 보필하는 동궁전으로 배속되었다.
그것이 내 생애 가장 찬란한 빛이자, 심장을 도려내는 아픈 인연의 시작임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네 눈빛이 꼭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구나.”
저하께서는 나를 처음 보신 날,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그 다정했던 한마디가 인연의 실타래가 되었던 것일까.
그날 이후 저하께서는 책을 읽으실 때나 잠자리에 드실 때면 유독 나를 찾으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지밀나인으로 곁에 두셨다.
어머니의 온기를 그리워하던 저하께서는 나를 무척이나 의지하셨다.
저하께서는 내가 들려주는 궁궐 밖 이야기에 즐거워하셨고, 우리 가족의 비극에 눈물을 흘리시며 꼭 바로잡아 주겠노라 약조하셨다.
그렇게 저하와 나는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보듬어주는 벗이 되었다.
저하께서 내게 ‘매화’라는 이름을 내려주시며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니, 너도 이 시린 궁궐에서 끝까지 견뎌다오”라고
속삭이시던 그 약속이, 지금도 내 가슴속엔 붉은 낙인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꿈결 같던 봄날은 길지 않았다.
병석에 누워 계시던 문종 전하께서 재위 2년 만에 끝내 승하하시자,
궐 안의 공기는 단숨에 얼어붙었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지엄한 왕의 무게를 머리에 얹으신 나의 전하께서는, 몸보다 큰 상복에 파묻힌 채 홀로 울고 계셨다. 그 가느다란 어깨가 감당하기엔 왕이라는 자리가 너무도 버거워 보였다..
어린 전하를 지켜줄 울타리는 견고해 보였다. 문종 전하의 유지를 받든 고명대신(顧命大臣) 김종서와 영의정 황보인 같은 거목들이 전하의 지척에서 서슬 퍼런 위엄으로 곁을 호위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누구도 감히 전하의 자리를 넘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견고함은 모래 위에 세워진 성과 같았다. 햇살이 비치지 않는 궐의 가장 깊은 그늘에서부터, 수양대군이라는 이름의 핏빛 먹물이 소리 없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형님의 승하와 동시에, 그동안 철저히 감춰왔던 권력을 향한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453년, 찬 바람이 유독 매서웠던 가을밤이었다.
역사는 그것을 계유정난이라 기록했으나, 내가 목격한 것은 그저 무참한 도륙이었다.
수양대군의 수하들은 전하의 충신들을 대궐 앞마당에서 무자비하게 때려 죽였다. 어둠 속에서 철퇴가 머리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전하의 울타리가 되어주던 이들의 숨줄이 허망하게 끊겨 나갔다. 정갈해야 할 궁궐의 박석은 충신들의 붉은 피로 물들었다.
"매화야, 밖이 왜 이리 소란스러우냐. 무섭구나."
그날 밤 전하께서는 내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파들파들 떠셨다.
비명에 섞인 피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들어올 때마다 나는 전하의 귀를 두 손으로 감쌌다.,
그날 대신들의 처절한 최후는 어린 왕의 심장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공포를 남겼다.
그날 이후, 궁궐은 수양대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전하는 명목상의 군주일 뿐, 실권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셨다.
수양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가여운 처지가 되신 것이다.
수양은 서늘한 위협으로 전하를 옥죄었고, 전하께서는 눈물로 얼룩진 선위 교서를 내리며, 위태롭던 보좌에서 스스로 내려오셨다.
상왕(上王)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창덕궁 구석으로 쫓겨나듯 옮겨온 날,
전하께서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등을 덮으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매화야, 이제는 아무도 나를 왕이라 부르지 않는구나. 오직 너만이 나의 곁을 지키는구나.”
나는 대답 대신 전하의 시린 손을 품에 안았다.
왕좌는 빼앗겼어도, 그분은 여전히 나의 하늘이었고, 내가 끝까지 지켜드려야 할 단 하나의 등불이었다.
하지만 비극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실패하자, 전하께서는 차디찬 유배길에 오르셨다.
왕좌에서 벼랑 끝으로, 전하의 운명은 무참히 떠밀려 내려가고 있었다.
1457년 여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된 전하의 천 리 유배길이 시작되었다.
금으로 수놓은 화려한 옥교 대신, 지붕조차 낮은 초라한 가마에 전하의 옥체가 실렸다.
나는 그 가마 곁을 바짝 뒤따르며 험준한 문경새재를 넘었다.
가마가 덜컹거릴 때마다 내 심장도 함께 내려앉았으나, 전하께서는 창 너머로 멀어져 가는 한양 땅을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으셨다.
영월의 청령포는 말 그대로 육지 속의 섬이었다.
삼면을 서슬 퍼런 동강의 물줄기가 가로막고,
뒤편은 깎아지른 절벽인 육육봉이 버티고 선 천혜의 감옥.
강물 소리는 밤낮없이 울어댔고, 전하께서는 그 소리를 피를 토하며 죽은 충신들의 곡소리 같다며 괴로워하셨다.
그 모진 땅에서 우리를 품어준 이는 영월의 아전 엄흥도였다.
그는 조정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도 산짐승을 잡아 오거나, 귀한 햇곡식을 들고 와 우리네 곤궁한 살림을 남몰래 보살폈다.
“항아님, 부디 기운을 내셔야 합니다. 전하 곁에는 이제 항아님뿐이지 않습니까.”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엄흥도를 보며, 나는 이 고립된 땅에도 말하지 못할 충절과 연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따뜻한 위로는 폭풍 전야의 정적처럼 짧았다.
어느 날 밤, 엄흥도가 사색이 되어 찾아왔다.
순흥에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이 전하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전하께서는 그날 밤,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다.
“매화야, 나 때문에 얼마나 더 많은 이가 피를 흘러야 한단 말이냐.”
떨리는 전하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금성대군의 죽음이 곧 전하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잔인한 수양대군, 독사같은 한명회가 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날 밤 강물은 더 거칠게 울었고, 멀리서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곧 들이닥칠 금군들의 발소리처럼 들려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나는 전하의 차가워진 손을 꼭 잡고, 밤새 그 곁을 지켰다.
“전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다 등을 돌려도, 이 매화는 끝까지 전하의 곁을 지킬 것입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남은 날들이 다 타버린 초의 심지처럼 힘겹게 버티고 있음을.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독사처럼 전하의 목을 죄어왔다.
잔혹한 운명은 허허벌판을 내달리는 삭풍처럼 우리를 향해 휘몰아쳤다.
그렇게 1457년 10월 24일.
그 날 내 세상은 멈췄고, 나의 전부였던 한 사람의 삶이 잔인하게 파묻혔다.
내 기억 속의 찬란했던 빛들은 모두 사그라들었다.
뺨을 때리는 서슬 퍼런 강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따스했던 전하의 손길 대신 시린 어둠만이 내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달빛 아래 차갑게 식어버린 동강의 물줄기만이 발아래서 넘실거렸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문도, 이름도, 그리고 내가 지켰던 나의 하늘도 모두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절벽 끝에 서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살을 에는 듯한 영월의 칼바람 사이로, 기이하게도 포근하고 따뜻한 바람 한 줄기가 내 뺨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서러운 눈물로 얼룩진 나의 얼굴을 전하의 고운 손길이 가만히 닦아주시는 것만 같았다.
“매화야, 고생 많았다. 이제 그만 울거라.”
환청처럼 들려오는 전하의 목소리에 나는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그리고 엄흥도가 전하를 모셨던 저 멀리 동을지산,
노루가 자리를 내어준 그 고요한 무덤을 향해 마지막으로 큰절을 올렸다.
“전하, 조금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이 매화가 달려가 전하의 손을 잡아드리겠나이다.”
망설임은 없었다.
나는 전하의 곁에서 피어났던 이름 그대로, 전하와 나의 생에 가장 추운 날 가장 고고하게 지는 꽃잎이 되어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흰 치맛자락이 밤공기를 가르며 나비처럼 펄럭였다.
차가운 강물이 나를 집어삼키는 순간, 나는 보았다.
햇살 눈부신 궁궐의 뜰에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던 열일곱 왕의 맑은 웃음을...
그렇게 나, 단종 전하의 마지막 궁녀 매화는
겨울이 오기도 전에 한떨기 꽃잎이 되어 떨어졌고,
전하 곁에서 영원히 지지 않을 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이 단편소설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속 매화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쓴 겁니다.
또한 첨부한 이미지들을 활용해 유튜브로도 제작했습니다.
몇개의 동영상과 움직이는 이미지, 생생한 목소리로 더빙했습니다.
유튜브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