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김 일병을 쏜 게 정말 장춘동이었을까?

<1972년 4월 · 닌호아 하이난거리 립스틱클럽>

by 부지깽이

규는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그만해, 장춘동!!”

하지만,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야수였다.


“빠큐! 너 이 새끼 마침 잘 왔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 새끼야!”

장춘동이 규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숨이 턱 막히는 고통과 함께 규는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오늘, 다 죽여줄게. 여기가 니들 묫자리다!”


쿵!

쿵!

쿵!

장춘동은 일어나려는 김 일병의 머리를 잡고 사정없이 바닥에 내리쳤다.


“그만! 제발, 그만해요!!”

린이 비명을 지르며 장춘동의 팔을 붙잡았다.

가냘픈 손으로 그의 손목을 끌어당겼지만, 그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린의 외침은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장춘동의 눈빛이 늑대처럼 번뜩였다.

“네 년이 끝까지—그래, 오늘 끝장을 보자.”

린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던 장춘동의 시야에 다른 목표물이 들어왔다.


그는 린을 밀치며 뚜엣 쪽으로 다가갔다.

문가에 얼어붙은 채 서 있던 뚜엣.

그녀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장춘동이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그의 손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광기가 실려 있었다.


뚜엣은 두 팔로 얼굴을 감쌌고, 쓰러져 있던 규는 절규했다.

“안 돼!!”

린이 울부짖었다.

“뚜엣!!”


그 순간, 시간이 한순간 정지된 듯한 침묵을 깨고—

퍽!

그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반격.

탁자 아래 엎어져 있던 김 일병이 남은 기운을 끌어모아 의자를 들어 장춘동의 종아리를 내리쳤다.

장춘동이 휘청하며 뒤로 넘어졌고, 뚜엣은 뒷걸음질쳤다.

린이 달려와 그녀를 끌어안았고, 규는 몸을 날려 일어나려는 장춘동을 다시 넘어뜨렸다.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났고,

모든 것이 순식간에 뒤엉켰다.


그리고 그 순간—

어느새 일어난 장춘동의 옆구리에서 퍽! 하는 둔탁한 충격음이 터졌다.

그의 몸이 빙그르르 돌더니 바닥에 처박혔다.


문 앞, 군번줄 하나가 하얀 이빨처럼 반짝였다.

군복 어깨에는 ‘Intel’ 마크.

냉철한 눈매, 단단한 턱선.

리차드 한이었다.

“Enough.”(그만!)

짧고 단호한 영어.

그 한마디가 얼어붙은 클럽 안 공기를 깨트렸다.


짐승처럼 날뛰던 장춘동은 움찔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무릎이 풀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눈앞의 사내가 그냥 미군이 아님을.

“Who the fuck···”(뭐야, 이 새끼는···)

장춘동은 웅얼거리다 상대 군복의 마크를 보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미군 정보병과 요원들 앞에서는, 군번도 계급도 의미가 없었다.

그 사실은 정보병과 소속 장춘동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장춘동은 잔뜩 찢어진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얼굴에 억지 웃음을 띄웠다.

“노 프라블럼. 프렌드.”

그러나—리차드는 말 없이 그를 스쳐 지나 피투성이가 된 규에게 다가갔다.

“Are you okay?”(괜찮습니까?)

규는 숨을 몰아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Thanks."(감사합니다)

리차드는 규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 다음은 김 일병, 그리고 린.

그의 손길은 짧고 간결했지만, 그들에게는 무너진 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손이었다.


규는 뚜엣에게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뚜엣의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이 고스란히 규의 품으로 전해졌다.

그리고—그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 장춘동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클럽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산산조각난 유리컵들, 찢어진 소파, 깨진 조명···.

김 일병은 피범벅이 된 손으로 탁자를 붙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이마에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린이 김 일병에게 다가와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김 일병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줬다.


리차드가 조용히 규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Actually, I came here following you··· because I have a favor to ask. I'd like to meet you alone, on your next day off.”

(사실, 박 병장을 따라 온 건—부탁이 있어서입니다. 다음 비번날에 단 둘이 만나고 싶습니다.)

규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Of course. Let’s meet here next Friday, 2 p.m.”

(물론입니다. 다음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여기서 뵙죠.)

리차드는 짧게 웃고, 사람들에게 목례한 후 절도있는 걸음으로 클럽을 나섰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규는 손등에 엉겨붙은 피를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김 일병을 쏜 게··· 정말, 장춘동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