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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Jul 10. 2024

12. 그렇게 살아나간다.

간직하고 살아나가는 삶.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 자신,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니면 죽음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지도 겪지도 못한다.


매일 왜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왜 내 곁에 없을까- 생각한다.


분명 몇 달 전에는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구상에 숨 쉬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내가 시간을 다해 가지 않으면 안 될 그곳- 내가 언제 닿을지도 모르는 그곳에 가있다.


가끔. "오빠, 어디 갔어? 어디 있어? 나 여기 있는데 어디 있어?" 마음속으로 묻곤 한다. 남편이 어디 있는지 아는데도. 그저 마음으로 묻고 또 찾는다.


나에게서 빼앗겨진 미래와 현재를 생각한다. 지금은 그 빼앗겨진 미래와 현재의 대안을 최선을 다해 그저 살아갈 뿐이다.


얼마 전에 시청역 인근에서 난 교통사고는 마음속에 많이 남았다. 잘잘못을 떠나..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과 남겨진 유족과 지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저렸고, 그분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췌장암이라고. 생존율이 너무 낮아 못 산다고. 심지어 마지막 입원에서 계속 임종에 대한 경고에 경고를 들었음에도 나는 죽음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죽음이 다가온다고 예고와 경고를 들은 나조차도- 이렇게 죽음 이후의 삶을 겪는 나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 시간들을 그분들은 어떻게 겪어 나가야 하는 걸까.


아무리 잊고 있는 노력을 하고, 멀쩡히 지내는 것 같아도. 여름철 장롱 속 깊숙이 넣어둔 겨울 솜이불처럼. 그 슬픔과 그 죽음은 내 마음에 고스란히 있고, 때가 되면 펼쳐내야 하는 것인 게다.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왜 내가 아니라 남편이어야 했을까. 왜 남편이 반 백 년도 누리지 못하암을 겪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나는 분명히 불과 몇 달 전에 남편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없는 걸까.  등등..


그 외에도 남편의 죽음과 나의 슬픔에 관해 수많은 질문과 생각이 있지만,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는 내가 이 슬픔을 잘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써내려 가기 위해 이 기록을 남기기로 했으나. 이제는 자신이 없다.


아마도 살 것이다. 살아질 것이다. 내 몫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그러나 당당히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변화를 가져온 이 큰 일을 잘 극복하고 잊었다고 말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단지 묻어두고 살아갈 뿐이다.


이해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납득시켜줬으면 했다. 답을 찾고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할수록 상처만 남았다. 그리고 아버님을 같은 병으로 먼저 보내고 산 어머님의 삶이 더 이해되고 내가 어머님을 더 보듬어 드리지 못한 게 그게 너무 죄스러웠다.


난 이해와 납득을 포기했다. 지금 먹고살기 위해 알아보고 배우는 것들이 있는데-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우선 읽는다. 그리고 그냥 외운다. 그리고 넘어간다. 다시 반복해서 그 부분을 만나거나, 지식이 쌓이면 그게 그냥 이해가 되거나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게 강사들은 말했다.


이게 배우는 일이 아니고, 남편의 죽음. 나의 슬픔. 내가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에 관한 것에도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이해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방법이 없다.


인생은 원래부터 납득이 되게 세팅된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일기도 글도 쓸 수가 없었다. 볼펜의 잉크가 말라 붙었다.


얼마 전 도현이 아빠(강릉 급발진 의심사고)의 국민일보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읽는 내리.. 그분의 말 하나 하나가 공감이 되었다.


아직도 영안실에서 본 남편의 얼굴이 너무 선명하다. 집 곳곳에는 활짝 웃는 남편의 얼굴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살아내었다.


이제 이 슬픔을 견디는 일상을 쓰는 일은 잠시 접어두어야겠다. 잘 지낸다는 것도. 잘 못 지낸다는 것도.  다 거짓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난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그대로 둔 채 살아가는 걸 선택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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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 그간 글쓰기에 최선 다하기 어려웠음을 고백해봅니다. 마음의 펜촉에 잉크가 적셔지는 날이 오면, 이제는.. 되도록 다른 일상 글을 쓰려고 생각해봅니다.

이 죽음과 이 슬픔의 무게를 그 누구의 것과 비교할 수도 없고, 온전히 담아내기엔 제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차근차근. 하루 하루. 조금이라도. 회복해나가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제가 뜸하게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올지라도 그런 것이라고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100번째 제 브런치스토리 글이 될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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