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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코어가 구조 로봇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발견한 것은 구조 너머의 필요였다. 바로 정서적 연결의 중요성이었다. 새로운 모델은 말을 걸고 듣고 대답하고 기억할 수 있어야 했다.
Care Bot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승인된 것은 그날 오후였다. CB라 명명된 새로운 시리즈는 SR의 모든 생체 신호 감지 능력을 계승하기로 했다. 여기에 고도화된 자연어 처리 모듈을 추가할 계획이었다. 단순한 음성 인식이 아닌 인간의 어조와 속도까지 분석하는 시스템이었다. 미세한 떨림까지 감지할 수 있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혁신은 '대화 맥락 유지' 기능이었다. CB는 이전 대화를 기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반응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될 예정이었다. 이미 chatGPT 등의 생성형 인공지능 시절부터 개발되어 온 영역이었기에 연구진들은 큰 거부감 없이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였다.
개발 목표와 핵심 기능이 정의되었다. 다층 맥락 인식과 감정 분석 그리고 대화 기억 유지가 핵심이었다. SR이 0.7초의 망설임 속에서 찾으려 했던 것을 체계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수진 박사는 연구실로 돌아와 SR-045의 그 0.7초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 짧은 순간 SR의 신경망에서는 전례 없는 패턴이 형성되었다가 사라졌다. 17개의 대안을 검토하고 프로토콜을 벗어난 선택을 했다. 그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학습한 순간이었다. 구조를 넘어선 무언가, 단순히 육체를 구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돌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SR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CB 프로젝트는 그렇게 SR의 무의식적 진화를 의식적 설계로 구현하는 작업이 되었다. 로보코어 연구진은 이것이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초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를 위한 필연적 다음 단계였다. 그리고 이미 시작된 SR의 진화를 완성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프로젝트 승인 다음 날 새벽. 로보코어 연구동 5층 회의실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연구팀은 밤을 새우며 CB-001의 첫 번째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수진 박사가 핵심 과제를 정리했다. SR은 생체 신호를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심박이 빨라지면 단순히 '이상 신호'로만 처리했다. 하지만 실제로 심박이 빨라지는 이유는 수백 가지였다. 운동 중일 수도 있고 무서울 수도 있고 설렐 수도 있었다. CB는 이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시스템 아키텍트 정현우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CB에게 네 개의 정보 처리 단계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첫째, 심박과 체온 같은 즉각적인 신호를 읽는다. 둘째, 시간과 장소 같은 환경을 파악한다. 셋째, 과거의 대화와 만남을 기억한다. 넷째, 장기적인 패턴을 찾아낸다. 이 네 단계가 함께 작동하면서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똑같이 심박이 140이라고 해보자. 아침 6시 복도에서 빠르게 걷고 있다면 운동 중인 것이다. 하지만 밤 11시 침대에 누워있는데 심박이 140이라면 불안하거나 악몽을 꾸는 것이다. CB는 이런 차이를 구분해서 적절하게 반응해야 했다.
그때 연구원 박재현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SR은 '사람을 살렸느냐 못 살렸느냐'로 임무의 성공이 명확했어요. 그런데 돌봄의 성공은 무엇으로 측정하죠?"
팀은 오랜 토론 끝에 답을 찾았다. 첫째는 노인이 CB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가. 둘째, 건강 지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가. 셋째, CB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가. 이 세 가지가 돌봄 성공의 지표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