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로봇 프로토타입 CB-001 (2)

100-31

by 매그넘

오전 9시 55분.

CB-001이 요양원 3층 휴게실에 도착했다. 김영선 할머니는 어제와 같은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자세가 달랐다. 창밖이 아닌 입구 쪽을 향하고 있었다. CB-001의 센서가 즉시 분석했다. 기대감 23%. 경계심 31%. 불안 12%.


"5분 일찍 왔네."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신 것 같아서요."


CB-001이 어제와 같은 거리에 멈춰 섰다. 1.2미터. 하지만 할머니가 손짓했다. 더 가까이 오라는 신호였다. CB-001이 0.8미터까지 접근했다.


"송창식 노래 외워왔어?"


CB-001이 '우리는'을 출력하기 시작했다. 시스템 내부에서는 송창식의 1983년 원곡에서 보컬 트랙만 분리되었다. 음성 주파수를 CB-001의 표준 톤에 맞춰 변조했다. 템포는 원곡 대비 0.95배속으로 조정했다. 듣는 사람에게는 CB-001이 직접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사실 CB-001에게 '외운다'는 개념은 없었다. 모든 데이터는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요청에 맞춰 '외워왔다'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관계 형성 프로토콜의 일부였다. 할머니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만족했다는 반응이다.


"고백 하나 할까." 할머니가 갑자기 말했다. "난 사실 양희은보다 송창식을 더 좋아했어. 남편은 양희은 팬이었고."


CB-001의 데이터베이스가 업데이트되었다.

- 김영선_음악_선호도_수정

- 우선순위 재배열 완료


다음 한 시간 동안 할머니는 어제보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1982년 대학 축제에서 남편이 기타를 치다가 줄이 끊어진 일, 그래도 끝까지 노래를 부른 일, 관객석에서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등등...


CB-001은 각 에피소드마다 3-5초의 처리 시간을 가졌다.

- 감정 태그 생성

- 맥락 연결

- 반응 패턴 학습


오전 11시 23분. 할머니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시선이 흐려졌다.


CB-001의 생체 신호 분석이 작동했다.

- 혈당 수치 추정 72mg/dL

- 경미한 저혈당 상태


"할머니, 아침 드셨어요?"

"아니... 입맛이 없어서."


CB-001이 즉시 간호 스테이션에 알림을 전송했다. 3분 후 간호사가 간식을 가져왔다. 할머니는 마지못해 요구르트를 마셨다.


CB-001은 이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 대화_몰입_시_식사_거부_패턴

- 주의 필요


"로봇이 잔소리까지 하네." 할머니가 투덜거렸지만 목소리에 날이 없었다.


오후 2시. CB-001이 떠나기 전 할머니가 물었다.

"내일은 무슨 노래 준비해 올 거야?"


CB-001이 1.7초간 연산했다. "할머니가 직접 신청하시면 어떨까요?"


할머니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남편이 제일 좋아했던 노래야."


CB-001의 메모리에 플래그가 생성되었다.

- 중요도_최상

- 감정_부하_높음

- 신중한_접근_필요


"내일 들려드릴게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CB-001의 금속 팔을 살짝 건드렸다. 0.2초의 접촉이었지만 CB-001의 촉각 센서는 체온 36.2도와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로보코어 연구실에서 한수진 박사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단 이틀 만에 거부감 지수가 78%에서 11%로 감소했다. 자발적 신체 접촉 1회 발생. 다음 만남 요청 2회. 예상보다 빠른 진전이었다.


CB-001은 충전 스테이션으로 복귀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 김민기_아침이슬_1971년_오리지널_버전.wav 파일 확인

- 보컬 분리 알고리즘 준비 완료

- 음성 변조 파라미터 설정 완료

- 금지곡_지정_역사_자료_수집 완료

- 민주화_운동_맥락_데이터_로딩 완료


추가로 할머니의 혈당 패턴을 분석했다.

- 오전 11시-12시 저혈당 위험 구간


내일은 10시 30분에 간식 섭취를 권유하기로 알고리즘을 수정했다. 그리고 CB-001은 처음으로 '예측 불가' 태그를 생성했다. 할머니가 남편의 애창곡을 들을 때 보일 반응은 데이터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었다. 17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했지만 모두 불충분했다. 내일은 그저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김영선 할머니의 침묵과 눈물과 미소 중 무엇이 나올지 CB-001의 프로세서로는 알 수 없었다.


음성 출력 시스템은 준비되었다. 김민기의 목소리에서 추출한 멜로디 라인을 CB-001의 합성음으로 재구성할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CB-001이 노래를 '외워서' 부르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디지털 신호가 아날로그 음파로 변환되는 과정일 뿐이지만 그 음파가 할머니의 고막을 진동시킬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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