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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4년 12월. 최윤철이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의 유언은 조용히 집행되었고, 정훈과 정민은 아버지가 50년 만에 먼저 건 전화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했다.
금손이라 불렸던 CB-7은 로보코어로 회수되었다. 포맷된 메모리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1.2미터라는 특정 거리 선호, 침묵의 가치 인식, '기다림'이라는 행동 패턴. 엔지니어들은 이를 '금손 효과'라 불렀다.
이 발견은 CB-8 개발로 이어졌다. 두 가지 핵심 진화가 있었다. 첫째, 후각과 촉각 센서가 추가되어 향기와 감정을 연결하고 악수의 떨림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둘째, 가족 전체와 소통하며 관계를 중재하고, 이전 경험을 익명화하여 다음 관계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45년 1월. 강북구의 작은 아파트.
"아, 네가 그 돌봄 로봇이구나."
77세 이윤경 할머니가 CB-8을 맞았다. 거부가 아닌 어색함이었다.
"어떻게 사용하면 되지? 설명서 같은 거 있어?"
"특별한 사용법은 없습니다. 그냥 대화하시면 됩니다."
"대화라..." 이 할머니가 거실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혼잣말만 하다가 누구랑 대화를 해본 게 얼마만인지."
거실 탁자 위에는 일주일치 신문이 쌓여 있었다. TV는 켜져 있었지만 음소거 상태였다.
"텔레비전은 시끄러워서 소리를 껐어. 그런데 화면이라도 있으면 덜 적적하거든."
CB-8의 새로운 후각 센서가 작동했다. 오래된 고독의 냄새와 함께 창가 화분의 라벤더 향.
"라벤더를 키우시네요."
"잘 죽지 않는 게 신기해서. 나처럼."
블랙유머였지만 CB-8은 웃지 않았다. 대신 정확히 2.1초 후 말했다.
"생명력이 강한 식물입니다. 할머니도 그러신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작게 웃었다.
"로봇이 위로도 하는구나."
"위로가 아닙니다. 관찰입니다."
저녁 무렵, 이 할머니가 물었다.
"내일도 오는 거지?"
"매일 옵니다."
"그럼... 내일은 말동무라도 해주겠니? 라디오만 듣다가 진짜 대화를 하니까 이상하네."
CB-8이 기록했다.
- 첫날 평가: 적극적 수용.
- 특이사항: 고독의 자각. 대화 욕구 높음.
CB-8은 이전 세대의 로봇들을 통해 학습된 '기다림'이 이제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기록했다. 이윤경 할머니는 외로움을 인정하고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어딘가에서 최윤철의 기부금으로 공급된 CB들이 도시 곳곳에 배치되고 있었다. 각자 다른 이름으로, 다른 관계로, 하지만 같은 목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