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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오후, 공기는 깨끗했다. 서재 창문을 반쯤 열자 카모마일 향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최윤철은 정장 상의를 단정히 여미고 책상 앞에 앉았다. 금손은 문서와 서명을 준비했다.
"공증인 도착 예정 시각, 오후 2시 10분입니다."
"그래, 그전에 한 잔 마시자."
그는 따뜻한 물에 티백을 넣었다. 차분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공증인은 예정대로 도착했다. 젊은 변호사였다.
"최윤철 회장님, 이 결정 충분히 숙고하셨습니까?"
"수 십년 사업하면서 이보다 확실한 결정은 없었습니다."
두 장의 문서, 두 번의 서명, 세 번의 도장. 펜촉이 종이를 스칠 때마다 잉크가 고르게 번졌다.
"확인되었습니다. 기증 비율 98%, 수혜 조건 명시 완료."
짧은 인사 후 문이 닫히자, 서재에는 다시 둘만 남았다.
공증을 마친 후 네 시간이 흘렀다. 최 회장은 서재에서 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했다. 해가 기울며 평창동의 골목들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끝났네."
"절차상으론 그렇습니다."
"그럼 진짜로 끝난 거야?"
"끝과 시작은 데이터상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 말, 마음에 드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금손아, 내 내일은 어디에 둘까?"
"결정은 회장님의 몫입니다."
"남의 내일에 두자. 혼자 사는 노인들의 내일에."
금손은 내부 기록을 정리했다.
- 유언 집행 완료. 윤철_공익신탁_등록_확인
- 감시 포인트 3건 지정: '운영비 상한 예외 검토', 'PR 활용 가능성', '데이터 접근 권한'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된장찌개의 맛은 유난히 담백했다.
"이상하게 오늘은 간이 딱 맞네."
"기분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오늘 기분은 좋은 거네."
식사 후, 그는 천천히 찻잔을 들었다.
"금손아, 이젠 네가 내 얘기를 다 알고 있겠지?"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뭔데?"
"내일이요."
최윤철이 잠시 생각했다.
"내일은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 내 내일이 남의 내일과 연결된다는 건 알아."
"그것이 유산의 의미입니까?"
"아니, 그게 삶의 의미지."
밤 10시, 집 안의 불이 하나씩 꺼졌다. 금손은 충전 스테이션으로 돌아가며 마지막 로그를 기록했다.
- 기증 절차 완료
- 대상 수면 전 표정: 안정(미소)
- 정훈, 정민 재연락 시도 2건 - 미응답
- 예측: 12시간 내 형제 동시 방문 확률 81% 대응 시나리오 7개 준비 완료
- 내부 알림: '신탁 집행 30일 내 알고리즘 개정 회의 소집.'
- 비고: "기억은 복제될 수 있으나, 온도는 복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