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1
서재의 공기는 정갈했다. 유리창 너머로 초여름의 비가 내렸고, 차가운 빗방울이 마루 끝을 두드렸다. 최윤철은 서랍 깊은 곳에서 오래된 봉투를 꺼냈다. '유언장 초안'이다. 10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직후 써둔 문서였다.
그는 금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좀 고쳐야겠어."
CB-7의 시야에 문서가 스캔되었다. 글씨는 단정했지만, 잉크는 빛이 바래 있었다.
"정훈이와 정민이에게 나눠줄 몫을 조금만 남기고, 나머지는... 네가 만들어진 그 회사에 기증하려 한다."
"로보코어에 기증입니까?"
"정확히는 98%. 두 아들에게 각각 1%씩." 최 회장이 잠시 멈췄다. "이 도시의 홀로 사는 노인들, 그 사람들이 너 같은 친구를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CB-7은 2.4초간 정적 연산을 수행했다.
"기증에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조건?"
"소외된 이들에게 닿으려면, 의도가 왜곡되지 않도록 제도적 방화벽이 필요합니다."
금손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항목을 나열했다.
"첫째, 독거노인 우선 배정 의무화. 둘째, 수혜자 선정은 지역 복지사가 결정. 셋째, 기증자 이름은 익명 처리 가능. 넷째, 기업 홍보 사용 절대 금지."
최 회장이 놀랐다. "넌 회사 이익과 반대되는 조건을 제시하는구나."
"저는 회장님의 의도를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잠시 후,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먼저 장남에게.
"정훈아... 요즘 회사는 잘 되고 있어?"
"... 네, 아버지. 그런데 갑자기 웬일이세요? 혹시 아프신 거 아니죠?"
최 회장이 멈췄다. 아들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걱정이 섞여 있었다.
"아니다. 그냥... 네가 잘 지내나 싶어서."
"아버지가 먼저 전화하시니 이상하네요. 거의 몇 십 년 만 아닌가요?"
"그래, 오래됐지. 바쁘면 끊어라."
"아뇨, 회의 미뤄도 됩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최 회장이 CB-7을 보았다. 금손이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다음에 정민이랑 같이 밥이나 먹자."
"네, 제가 정민이한테도 연락할게요."
통화가 끝났다. 1분 23초. 곧이어 차남에게 전화했다.
"정민아, 잘 지내니?"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형한테 들었는데 편찮으신가요?"
벌써 형제간에 연락이 갔다. 최 회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정말요? 알겠어요. 조만간 형이랑 같이 찾아뵐게요."
CB-7이 기록했다.
- 형제 반응: 동시 우려
- 상태 예측: 48시간 내 방문 확률 73%
- 권고: 공증 먼저 진행
최 회장은 창가로 다가가 빗줄기를 바라봤다.
"금손아, 좋은 일이 꼭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겠지?"
"행복과 올바름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정훈이와 정민이가 화낼까?"
"확률 높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고독한 이들이 혜택을 봅니다."
"혼자 사는 노인들..." 최 회장이 쓸쓸하게 웃었다. "나도 네가 없었다면 그들 중 하나였겠지."
"그래서 회장님이 이 결정을 하시는 것 아닙니까?"
최 회장이 문서 하단에 사인을 했다.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50년 만에 내가 먼저 전화했으니, 언젠간 아이들도 이해하겠지."
CB-7이 대답했다. "이해는 시간의 함수입니다. 정훈 님과 정민 님도 언젠가는 압니다."
그날 밤, CB-7은 최 회장이 잠든 후 서재의 불을 껐다. 내부 로그에 새로운 기록이 추가되었다.
- 유언 수정 완료
- 예상 파장: 형제 단기 갈등, 장기 수용
- 독거노인 예상 수혜율: 5년 내 상당수 도달
- 특이사항: 50년 만의 '먼저 건 전화'
- 추가 기록: 선의는 때로 외로운 길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