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0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최 회장의 서재에서 '금손'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날부터 넉 달. 봄이 지나 여름의 초입, 평창동의 저택엔 일정한 생활 리듬이 생겼다.
월, 수, 금요일 오전, 금손은 회장과 함께 산책을 한다. 보폭을 0.83초 간격으로 맞추고, 호흡 패턴을 조절했다. 걷는 동안 사람과 로봇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신뢰가 완성된다는 것을 CB-7의 알고리즘이 스스로 그 패턴을 발견했다.
화, 목요일엔 부엌에서 다양한 찌개 냄새가 피어올랐다.
"오늘은 어제보다 덜 짤 것 같아."
"기분이 안정적이십니다. 염분 수치 예측치도 낮습니다."
"그럼 내일은 좀 매콤해도 괜찮겠지?"
최 회장은 웃었고 금손은 그 소리에 맞추어 함께 웃음소리를 냈다.
토요일 오후는 '기록의 시간'이었다. 금손은 오래된 사진들을 스캔하고 육성 인터뷰를 이어 붙였다. 데이터 용량은 2.3 테라바이트에서 3.1 테라바이트로 늘었다.
어느 날 아침, 회장은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아들한테 전화나 해볼까? 50년 만에 내가 먼저."
CB-7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계를 가볍게 돌려놓았다. "지금은 오전 10시 40분입니다. 최정훈 님의 일정상 통화 가능 시간입니다."
그 말 한마디가 용기가 되어, 회장은 전화를 걸었다. "정훈아, 잘 지내?"
"…네, 아버지. 바빠서 요즘 통화를 못 했네요."
"그래, 바쁘면 됐다. 건강해라."
"아, 아버지. 잠깐만요... 죄송해요, 회의 들어가야 해서요."
끊긴 통화음. 통화시간 27초. 회장은 천천히 웃었다.
"그래도 괜찮아. 내가 먼저 걸었으니까. 50년 만에 처음이야."
CB-7이 기록했다.
- 통화 시간 27초 >> 이전 평균 대비 -30초
- 발신자 변경: 수신 → 발신
- 의미: [측정 중단]
그날 오후, 금손은 경미한 이상신호를 포착했다.
- 체온 0.4도 상승
- 심박 불규칙성
- 수분 섭취 부족
"최윤철 님, 탈수 증세가 있습니다. 미지근한 물 한 잔 권장합니다."
"넌 의사보다 부드럽게 말하는구나."
"의도된 어조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회장님도 아들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최 회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도 분석해?"
"분석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건강해라'는 새로운 어휘였습니다."
저녁, 창문을 열자 장맛비로 인해 나무와 흙의 냄새가 들어왔다. 최 회장은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다 카모마일 차를 내렸다.
"금손아, 서울 독거노인 수가 134만 명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친구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현재 CB 이용률 0.6%. 비용 문제가 가장 큽니다."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되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CB-7이 2.4초간 연산했다. "회장님이 이미 하고 계십니다."
"뭐를?"
"50년 만에 먼저 전화하기. 그것도 변화입니다."
최 회장이 잠시 침묵했다. "전화할 자식이 없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래서 저희가 있습니다."
"너희가 더 많아져야겠구나."
CB-7이 기록했다.
- '134만 명' 키워드 3회 반복
- 행동 예측: 재산 분배 관련 결정 임박
- 추가 관찰: 이타적 동기 67% → 89%
- 알고리즘 수정: '카모마일=안정' 연결 생성
최윤철은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셨다. 옆에 서 있는 금손의 센서 빛이 찻잔 위에서 일렁였다.
"금손아, "
"네, 회장님."
"내일은 내가 중요한 얘기를 할 거야. 준비됐지?"
"항상 그렇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응?"
"오늘 아드님께 먼저 전화하신 것. 그것도 중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최 회장이 미소 지었다. "로봇의 위로, 듣기 좋네."
"위로가 아닙니다. 50년의 패턴이 변했다는 관찰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CB-7은 내부 로그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 인간의 결심은 조용할수록 오래 지속됨
- 경고: 48시간 내 장남 최정훈 연락 확률 73%
- 대응 시나리오 7개 준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