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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Mar 17. 2024

나의 죽음에 대한 (거의) 첫 생각

(당이궁 ver2) 2주 차 주제 : 내가 원하는 나의 죽음과 장례식

매주 1회 토요일 오전에 모여 함께 글을 쓰며 생각을 나누는 취미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글잡이의 주제설명] 

저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기도 하고, 실제로 죽음이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이라는 걸 항상 상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원하는 죽음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습니다.   


1. 어떤 방식의 죽음을 원하시나요? (죽기 1년 전 그 사실을 알고 죽음에 대비하고 싶은지, 갑자기 사고로 죽고 싶은지 등) (10분)


 죽음에 대해 10번의 간격으로 소식을 듣고 싶다. 기대 수명만큼 산다면 지금부터 나는 60년 후에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매 6년에 한 번씩, 10%, 20%… 식의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듣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소식을 전달해 주는 존재가 ‘누구인가’라는 부분이다. 어떤 의사로부터 듣기보단 서점에서 만난 책의 한 구절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길 가다가 문득 눈길이 가는 번호판에 나의 삶의 50%가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마치 사건 현장을 다루는 형사가 된 것처럼, 아주 면밀하게 주변을 돌아보고 그 신호를 캐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낯선 것을 즐거워하는 나의 성향을 고려해 보면 더욱더, 이 방식이 좋은 것 같다. 사실 <나이> 자체가 그런 것 아닐까. 기대수명을 80살로 잡는다면, 이미 나는 40%를 넘어 선 것이다. 이제 죽기까지 60% 남았어, 앞으로 60년 동안은 너의 몸뚱이를 갖고 어떻게 살래?라는 질문을 계속, 다양한 존재로부터 듣고 싶다. 영화나 드라마 한 구절도 좋다. 동네 서점에서 예쁘다고 집어 들은 책 속 한 구절이어도 괜찮겠다. 우연찮게 찾아간 동네의 카페 주인이 좋아하는 글귀라고 벽에 붙여놓은 것에서도 나의 남은 인생이 몇 퍼센트였는지 알려주면 어떨까.       

그런데 길거리에서 객사하고 싶진 않다. 굳이 따지자면 숲이 우거진 곳에서 눈 내리는 바깥을 보며 “어 그래 숨이 붙어있는 순간순간이 좋았어”라고 이야기를 하며 잠들듯 끝나면 좋을 것 같다. 밤에 하늘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빛나는 별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 눈앞으로 온갖 ‘후회되는 일들’과 ‘뿌듯한 일들’ 이 번갈아서 영화처럼 흐를 것도 같다. 그 끝에서, 세상을 향해 “얘들아 나 진짜 간다! 안녕!!! 행복해 진짜야”  


2. 내일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당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케줄을 짜주세요. (10분)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 먹을 약속을 잡는다.

아침은 가족과 간단히, 점심은 친구와 먹고 저녁은 진짜 맛있는 곳에서 먹는데, 영화가 틀어져있는 야외 테라스를 가진 곳에서 먹으려 한다.         

아침밥은 9시, 점심은 13시, 저녁은 18시로 잡고 만나기로 결정을 하고, 그 중간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먼저 눈을 떠서 9시가 되기 전까지 나는 내가 하던 평소의 루틴을 할 것이다. 마지막 순간의 내가 그 모습을 기억하고 뿌듯해할 만한 장면들이니 말이다. 아침공부와 크로스핏을 다녀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선 사람들에게 진한 인사를 한다. 정말 잘 지내라고, 내가 이젠 못 나오는데 뭔 일이 생겼다기 보단,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을 하고 나온다.         

그리고 나선 크로스핏에서 아침밥을 먹을 장소까지 천천히 걸어온다. 길가에 놓인 꽃들과 나무들도 한 번씩 만져본다. 밥을 먹고 나서 갈 카페나 그 카페 속 빵도 한번 확인해 본다. 평소 가려다가 못 간 곳에 한번 들러 그 빵을 포장한다. 그리고 나선 아침밥을 먹고, 후식으로 디저트를 먹는다. 별일 없는 것처럼 헛소리도 해댄다. 동생의 연애 이야기와 엄마의 아빠 걱정을 한 트럭 듣는 것이다. 그리고 나선 내 이야기를 잠깐 꺼낸다. 오늘이 이 집에 올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마 이 부분에선 울겠지. 아침을 먹자마자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다. 아까 먹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그렇게 엉엉 울고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 태어났을 때 오늘까지의 몇만 시간이 지금 어떻게 흘러왔었는지, 서로가 어떤 존재였는지도 이야기할 것이다. 엄마의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었고, 동생의 어떤 스토리가 가장 웃기고 즐거웠는지도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그 덕에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말을 하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도 하나 남겨줄 것이다.         

나는 참 이 노래 들을 때 그렇게 가족이 생각나더라고, 라며 말이다.

 울며 불며 집에 있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되어있을 것이다. 점심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나와선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점심으론 맛있는 초밥을 먹지 않을까. 기름기가 가득한 참치와 고소한 부분이 합쳐진 황새치 뱃살을 먹는다. 그렇게 또 친구에게 마지막 음식을 먹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오늘만큼은, 그만 너의 이야기를 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으라며 다소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말이다. 내 삶을 그렇게 떄려박듯 정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다를 또 떨면 아마 시간은 15~16시가 될 것이다. 혼자 서점에 들를 것이다. 그리고선 아마 다 읽지 못할 신간을 살 것이다. 이 신간은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존재구나,라는 말과 함께 하나를 골라, 나와선 길거리에 앉아 햇볕을 쬐며 책을 읽어댈 것이다. 졸리면 앉아있던 의자에 잠깐 기댔다가, 다시 일어나 주변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사서 마실 것이다. 마지막 아메리카노나 마지막 라테가 될 것이다. 앉아서 그렇게 있었더니 배가 꺼지지 않았는데도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있을 것이다.

짐을 챙겨선, 저녁 장소로 간다. 야경이 잘 보이는 곳에 있는 식당, 스테이크와 각종 음식들이 가득한 호텔 뷔페에 앉아선, 못 먹어본 와인과 싱글 몰트 위스키를 한 병 씩 시킨다. 그리고선 혼자 홀짝인다. 이렇게 보내는 게 쫌 그런가, 하고선 다시 가족과 친구를 몇 명 부른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떤다.   



3. 아래의 글을 읽고 내가 원하는 나만의 장례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또한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상상해 봅시다. (15분)

    참고자료 1 가장 친환경적인 장례 방법

    https://www.bbc.com/korean/news-47067833


 외국에서처럼 시신을 묻고, 그 묻는 장면을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 같은 ‘전형적인 형태’는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만 나의 숨이 끊어질 때엔, 가족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선 한 마디씩 해주는 것들이 잘 녹음되었다가 장례식장에서 트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나의 카메라 속 ‘내 시선’을 담은 영상들을 연결해서, <000의 삶의 관점>에 대해 타인들도 알 수 있게 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내 핸드폰으로 찍었던 그 수많은 ‘오래된 동영상’부터 최근의 동영상까지. 이런 것들에 관심을 보이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나눠볼 수 있게 하는 것이면 되겠다. 그렇게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구 섞인 다음엔, 그 영상 자료 파일을 USB나 기타 외장하드로 담아 저장한다.

그다음 외장하드와 나의 시신은 태워서 백골로 만들고, 그걸 자연과 가까운 곳에 묻어두거나 뿌렸으면 좋겠다. 내 장례식은 글쎄, 나를 아는 몇 명의 지인이 모여 나의 가루를 뿌리고 있지 않을까. 어떤 숲 한 공간을 빌려, 수목장을 만들고 그 위에 나의 사진을 걸어 나를 그리는 것을 생각했다. 안 쓰는 아이패드에 태양광 충전기를 달아 계속 재생하는 것도 고려했었다. 관리는 어렵겠지.  

지금 생각엔, 앞으로 남은 60년 후엔 지구가 많이 바뀌어있지 않을까. 그때까지 계속 내가 반복하는 어떤 ‘말하기 습관(택도없지, 등등)’ 이, 내 비석 옆에 작게 쓰여있으면 좋겠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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