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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May 23. 2024

여름을 음미하게 하는 노래

최유리의 <숲>

아 이 뮤직비디오는 시작할 때 매미소리가 나온다. 너무 좋다.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이 디테일이라니. 어디 나만 아는 숲에 가서 하루종일 매미소리와 최유리 목소리를 듣고 싶은 순간이다. 내가 좋아했던 각종 여름들이 마구 머릿속에서 흘러넘치는 순간이다. 어느 여름의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탁구를 치고 있었다. 어느 여름의 나는 우산이 없어서 교복을 입은 채로 집까지 천천히 장대비를 맞으며 걸어왔다. 그때 비를 맞았을 때의 통쾌함이란! 거의 20년 동안 계속 그 기억만 가지고 있다가 작년 여름에, 따릉이를 타고 연남동에서 또 한 번 잔뜩 비를 맞기도 했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해방감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ihLv8_Vd-4


몇몇 여름은 울적했었다. 지독한 우울에 빠져 학원에 가지 않고, 종로 영어학원을 향하는 버스를 타고 종로를 거쳐 동대문역까지 다녀온 적도 있었다. 앞은 봐야겠다면서 맨 앞에 앉아선, 버스의 에어컨을 잔뜩 쐬면서 눈물을 엄청 흘려댔다. 그때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슬픔을 말할 수 없었다. 나만큼 공감을 해주지 않을뿐더러, 내 슬픔에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오직 나만 나의 슬픔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몇 날 며칠 계속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버스에서 펑펑 울기도 했었다. 내 나름으로 나의 ‘우울'을 달래는 방법이었다. 끝까지 울게 두는, 그런 …


또 어느 여름날은 매미가 세게 울어대고, 나는 햇빛 가득 내리쬐지만 풀들 덕분에 가려진 햇볕을 감상하며 이대와 그 부근을 걸어 다녔던 것도 같다. 어느 여름엔 친구들과 물총 놀이를 했었다. 또 어느 여름엔 하루종일 주짓수를 하기도 했다. 땀냄새 가득 나는 공간에서, 비를 맞았을 때 보다 더 흠뻑 젖은 나의 머리칼을 휘두르며 집에 돌아왔던 기억도 난다. 더웠던 여름 낮을 뒤로 하고, 약간 선선해진 여름밤을 맞는 건 정말 끝내주는 순간이었다. 주짓수를 하고 집에 오는 길은 항상 그랬다. 깨끗하게 씻고 470 버스를 타고 강남에서 집까지. 오는 길에 잔뜩 조는 것도 좋았다. 시원한 버스에서 졸다보면 집에 도착해 있었다. 그럼 또 거기서 한숨을 더 푹 자는 것이다.


아아 그 모든 나의 추억들이 여름에 맺혀있다. 나는 초여름을 사랑한다. 한여름도, 그리고 늦여름까지 너무나 좋아한다. 태어난 건 봄이지만, 나는 여름에 많은 기억들을 연결시켜 두었다. 가을도 좋지만, 나는 여름에 더 많이 움직여댔던 기억이 난다. 그 더위 속의 내 모습이 참 좋았던 게 분명하다. 그 땀내 나는 몸뚱이는 사실, 내가 ‘1분 1초를 열심히 꾸려나가고 있다’라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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