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 칸을 얻었다. 부모님 집에서 살던 방과 같은 크기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의 반 정도만 들고가면,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택도 없는 소리였다. 새로운 방 한칸은 부엌과 화장실, 거실과 방이란 모든 공간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 며칠 전까지 살던 집을 압축팩에 넣고 진공 청소기로 공기를 모두 빼낸 느낌이다. 부모님 집에 머물던 ‘여유로움’ 이라는 공기를 모두 빨아 없에버린 양, 작고 조그만 공간에 나의 짐들을 하나 둘 씩 넣어버렸다.
직접 짐을 3일동안 옮겼다. 지치면 누워서 앉아있다가 다시 또 짐을 가져오길 반복, 몇몇 짐들을 너무 가져가고 싶어 싸두었다가도 여력이 남지 않아 다시 풀기도 반복했다. 꼭 필요한 것과, 꼭 가져가고 싶은게 무엇일까를 몇 번이고 고민했다. 나라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물건과, 나의 행복을 도울 수 있는 물건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일치하는 물건들은, 예쁘고 비쌌다. 가격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압축률이 높은 이 집에 그런 물건들이 어울리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발뮤다 전기포트 같은.
분명 퇴실 청소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눈엔 여기저기 작은 곰팡이와 얼룩들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큰 것들만 닦여있었다. 창틀과 화장실, 옷장 같은것들 말이다. 그보다 작은, 이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 눈에만 보이는 청소는 내 몫이였다. 더러워보이는 벽의 자국을 닦았다. 타일로 된 부엌부분 벽에는 물티슈로 벅벅 문대고 날카로운 것들로 긁어야 떨어지는 아주 작은 얼룩들이 꽤 있었다. 물티슈 두 통을 사와 그 중 한통을 다 쓸 기세로 닦았다. 화장실 거울의 물 얼룩들은 몇 번을 닦아도 없어지지 않았다. 포기했다. 실리콘 들에 생겨있는 곰팡이를 제거하는 약품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눈에 보이는 실리콘 위에 잔뜩 올려두었다. 닦아내기까지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했다.
내겐 이 공간이 꽤 낯설었다. 불편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이 공간에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여행을 온 사람처럼 마음이 둥둥 뜬 채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잠깐 했고 말이다. 언젠가 떠날 공간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내가 정을 주어야 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지. 이상하게도, 첫 화장실 청소와 개수대, 창틀 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그 마음이 달리 들었다. 조금 더 익숙해져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퇴실 청소부가 남기고 간 숙제가 오히려, 나와 이 공간의 거리감을 좁혀주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밥짓기였다. 새로 산 밥솥을 닦고, 처음으로 밥을 한게 왜 이렇게 새로울까. 햇반도, 얼린 밥도 내게 줄 수 없던 묘한 경험이었다. 나의 밥솥이 밥을 하고, 그 밥은 온전히 내 입으로만 들어간다. 부모님 집에서 한 밥 짓는 경험과 사뭇 달랐다. 공간이 이렇게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일까. 인간이 아니라 상황을 보라는 어느 영화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내가 한 밥을 얼려놓기 위해 냉동고에 하나씩 넣으며, 다시 나의 상황을 인식한다. 이제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