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023.05.11 / Editor 버들
새봄의 버드나무는 싱그럽다. 원래의 가지 끝에서 새로이 뻗은 가지가 낭창낭창하고, 갓 나온 새순들은 얇고 보드라워 만지면 물기가 묻어날 듯 촉촉하다. 그리고 그 빛깔. 사람이 조색한 그 어느 연두색보다 여리고 생기가 넘쳐,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서부터 간지러움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새봄의 버드나무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늘 오가는 길목에 서 있던 버드나무 덕분이었다. 특히 봄의 따스해진 공기가 살랑 바람을 일으킬 때, 느리고 가볍고 미세하게 움직이는 가지와 잎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졸업 이후 내가 학교로 돌아간 것은 꼭 십 년만이었다. 학교는 그사이 낡아진 이모저모를 손보고 새 건물도 지어 올렸다. 그래도 대체로 눈에 익은 모습이었지만, 몇 걸음 더 옮겨 도착한 그곳에, 새로 정비된 길이 매끈한 그곳에, 버드나무는 없었다.
변화가 빠른 시대를 살고 있고, 많은 것들이 신속히 고안되었다가 실용성과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폐기된다. 그렇지만 나처럼 무엇이든지 느린 사람은 머리로는 그 불가피함을 이해하더라도 마음으로 납득하기가 늘 어렵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들은 나의 필요를 가려 받아들이고 말고를 결정하면 되지만, 한번 마음을 주었던 것의 사라짐은 매번 서운하다.
또다른 봄의 어느 날이었다. 하동에서 올라온 햇 세작을 입구가 넓고 둥근 고백자 숙우에 담았다. 끓여서 한 김 식힌 물을 붓자, 바싹 말라 있던 찻잎이 천천히 펴지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하늘하늘 제 몸을 펼치며 주변을 연두빛으로 물들여가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 작고 섬세한 움직임, 우아한 춤 같아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몸짓은 꼭 나의 버드나무의 그것 같았다.
어쩌면 무언가가 내 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반드시 그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도 우리는 종종 믿지 않는가. 지금은 곁에 없는 소중한 사람이 내 삶에 남긴 흔적이나,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되는 미지의 힘 같은 것.
교정의 버드나무는 이제 그 자리에 없지만, 그 시절 그 길목을 지나며 사소한 것에 감탄하고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던 시간은 나를 지금의 내가 되게 한 큰 부분이었다. 사라진 듯 보이는 것들은 그렇게 형태와 성질을 바꾸어, 그렇지만 그 본질은 오롯이 간직한 채로, 여전히 있다.
동아시아의 좋은 차
Magpie&Tiger
‘차와 닮은 삶’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던져보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