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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태 Aug 18. 2021

데이빗 로워리의 <그린 나이트>

명예에 관하여.

고전 문학이 주는 의미


기사 가웨인

나는 고전 문학을 매우 좋아한다. 더불어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그 영역을 더 넓혀갔다. 대다수의 현대 문화예술 장르가 고전 문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전의 이야기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뻔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거기에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내용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검증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그 역사가 유구하기에 마법적인 요소나 비현실적인 부분들은 점점 더 더해져 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너무 쉽게 예상 가능하고 단순해 보이며, 온갖 허황된 것들로 가득 차 보이는 고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많다. 그 당시부터 하던 인간으로서의 고뇌, 삶의 방향을 찾는 과정, 위기를 극복해낸 힘의 원천 등이 기본을 이루기 때문이다. 즉, 부가적인 것들에는 판타지 요소와 같은 거짓이 더해져 갔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영화 <그린 나이트>를 보고 전체적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


녹색 기사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 (14세기 말)>는 아서왕 전설의 일부이다. 크리스마스 날, 녹색 기사의 목을 벤 자는 정확히 일 년 후 자신도 똑같이 녹색 기사에게 목을 내놓아야 한다는 크리스마스 게임에 젊은 기사 가웨인이 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 (2021)> 또한 이 부분부터 영화를 시작한다.


이렇듯 중세에는 기사들의 이야기가 많은데, 기사들이 전쟁이 없을 때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자신들이 겪었던 경험들에 여러 요소를 넣어 이야기를 재구성해냈고 이를 동료들과 나눴기 때문이다. 성 안의 로맨스, 전장에서의 무용담 등이 주를 이뤘으며, 이들에게 이러한 자신만의 이야기는 하나의 명예가 되었다. 남들은 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는 징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서왕 아내의 말로 알 수 있듯이 가웨인에게는 아직 이러한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른 기사들과 아서왕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목을 받기 위해 아서왕의 검으로 녹색 기사의 머리를 밴다. 하지만 1년은 금방이고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곧 녹색 기사를 찾아가 죽음을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명예를 얻는다는 것


1년 후 녹색 기사를 찾아 나서는 가웨인

가웨인은 줄곧 기사답지 않은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기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기보다 성 밖의 여자들과 놀기를 좋아하며,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나게 된 불량배에도 쉽게 제압당하고는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그런 가웨인에게도 긍정적인 면은 있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자라는 것이다. 그는 책임을 질 줄 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해야 하지만 1년 전 본인이 행한 행동을 알고 이에 맞는 결말을 맞이하러 본인의 두 발로 나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명예는 남들이 하기 쉽지 않은 일을 해냈을 때 얻게 된다. 가령 대다수가 진학에 실패하는 명문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그에 맞는 명예를 갖게 된다거나,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사업을 대담하게 해 봄으로써 부와 명예를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에게 명예를 운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성공이 명예의 기준이 돼서 그런 것일까? 자신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자도 충분히 명예 있는 사람임에도 불하고 말이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웨인을 따라다니던 여우

아서왕의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린 날 성의 다른 장소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사실 녹색 기사는 가웨인의 어머니 모건 르 페이가 만든 존재였다. 아직 철들지 않은 그에게 일종의 시련을 부여함으로써 성장을 유도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아들인 가웨인이 걱정되었는지 녹색 기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여우를 붙게 한다. 영화에서 이 여우가 모건 르 페이에 만들어진 존재라는 점은 등장하지 않지만, 여우가 묵묵히 가웨인의 뒤를 따라다닌다는 점에서는 그저 동행자로 보였다. 우리의 길을 걱정하며 뒤에서 바라볼 뿐인 부모의 심정이 깃든 게 아닐까?


녹색 교회에 다 달았을 때, 여우는 처음으로 말을 한다. 이곳을 건너면 죽음뿐이니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가웨인은 흔들리지만 이내 거절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를 뚫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러 가던 가웨인의 모습은 인상 깊다.


죽음에 가까웠던 자


돌아온 가웨인

결국 녹색 기사는 가웨인의 목을 자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웨인은 녹색 기사에 의해 죽어야 했던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끝을 보았었다. 이를 알고 있는 가웨인은 삶의 어느 정도 시기까지는 녹색 허리띠를 차고 있으므로써 보호막 속에서 살아간다. 이 허리띠야말로 가웨인을 진정으로 보호해주고 그에게 힘의 원천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가 이대로 끝났다면, 가웨인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허리띠에 의지하며 여생을 보낸 '성장하지 못한 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웨인은 이 녹색 허리띠를 풀어내고 본인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를 끊어내는 순간, 가웨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성장하고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며, 이 점을 알고 있는 녹색 기사도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Now, Off with your head."


그래서 명예는


일종의 성장통을 겪는 가웨인

가웨인은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 낸 녹색 기사와 크리스마스 게임을 하게 되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놀기를 좋아하던 그가 생명이 걸린 모험을 떠나게 되고, 수많은 욕구를 참아내야 했으며, 일생일대의 결정들을 해야 했다.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말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까지가 나의 길일까? 녹색 기사는 있긴 한 걸까? 그도 기억할까? 벨트를 풀고 떳떳하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 셀 수 없이 많은 의문 속 그는 옳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잘못된 길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끝으로 그의 딸이 비어있는 왕관을 쓰게 됨으로써 그는 명예로운 삶의 끝을 선택한다.


젊은 기사 가웨인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그 명예. 그 명예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며, 자신만의 판단, 선택, 떳떳함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우린 알 수 있다.


상징과 이해


<그린 나이트>의 기본적인 배경이 되는 아서왕 전설과 감독이 의도한 많은 상징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매우 어렵고 애매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 글을 쓰면서도 영화 곳곳에 포함된 여러 상징과 의도된 장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해석을 봐야 하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데이빗 로워리의 <그린 나이트>는 A24 특유의 독립 영화 감성과 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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