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태국
도이수텝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한 지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타고 온 썽태우를 찾아 그대로 올라탔다. 썽태우 안에는 여전히 네 쌍의 커플이 미소 짓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도이수텝 그 길을 따라 내려온다. 썽태우 안에선 바깥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얇은 창틀 사이엔 맑은 하늘이 담겼다. 썽태우가 치앙마이 대학을 지나 님만해민을 지나갈 때쯤 급하게 차를 세웠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전에 먹었던 돈카츠 집 'Mu's Katsu'. 새벽부터 일어나 돌아다니려니 허기가 졌다. 짧은 여행 중에도 종종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나 카페는 두 번 이상 들르곤 한다. 사방에 낯선 것들 투성이인 여행지에서는 두 번이란 횟수만으로 엄청난 익숙함을 선물 받을 수 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님만해민 거리를 돌아다닐 힘이 생긴다.
치앙마이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 님만해민은 오후가 되면 차들로 가득 찬다. 서울로 치면 신촌에서 홍대를 지나는 길목쯤이 이와 같을까. 매일 같이 복잡한 서울의 러시아워를 차로 통과하고 있던 나는 치앙마이에서 만큼은 번잡한 교통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되도록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한다.
좋은 꿈을 꾸고 샀던 로또가 안 맞은 날 내 마음이 저랬을까.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프고 괜히 한숨도 나오는 어느 날들이 생각난다. 스마트폰을 보고 앉아 있는 한 아저씨에게서 일상의 피로에 짓눌려있던 시간들이 떠올라 한참을 바라보았다. 공감의 시선, 혹은 위로의 시선을 보내며.
주머니를 뒤져보니 49밧이 남아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던 아저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내일모레면 이 여행도 끝이 나고, 나는 치앙마이를 떠날 텐데. 돈을 더 찾아야 하는 걸까. 그래도 별 수 없지. 돈을 찾아야지. 그런데 웬걸, 하필 ATM기도 말썽이다. 더운 날씨에 녹초가 된 채로 겨우 님만해민 근처 작은 쇼핑몰로 대피했다. 에어컨 바람에 한 숨 돌리며 쇼핑몰을 둘러본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진 쇼핑몰 직원들이 테라스에서 머리를 모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잠에 빠진 사람들,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빈털터리인 나.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치앙마이는, 다양한 휴식의 얼굴을 선보이며 말한다. 별 일 아니라고. 이런 날도 있는 거 아니겠냐고.
푸드코트 한 카페에 손님은 없고 한 꼬마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난 커피 한잔 사 마실 돈이 없었다. 푸드코트 안 어느 식당에도 내가 가진 돈으로 사 먹을 음식은 없었다. 아이는 손님일까, 가게 주인의 아이일까. 숙소까지는 걸어가야만 했다. 가는 길에 세븐일레븐에 들러 우유 하나와 빵을 사 가지고 들어갔다. 외롭고 가난한 여행자의 막막한 하루가 지나간다.
Camera : Fuji X-pro2
Lens : XF 16mm F1.4, XF 35mm F2.0
Mu's Katsu 홈페이지 : http://mus-kats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