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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용 May 17. 2020

초졸, 60대 엄마의 취업기-3

면접 그리고...

지도 앱을 켰다. 3일 뒤 지방 공기관 본사에서 면접이 예정되었다. 지도와 면접 예상 질문을 출력하고 기차표를 끊어 엄마에게 줬다.


"7살이 된 엄마, 엄마의 나이가 된 나"


예상 질문을 뽑아 엄마와 모의 면접을 했다. 엄마는 많이 긴장해 단답형으로 예, 아니오만 대답했다. 그리고 본인도 모르게 "이래야지"라는 말을 끝에 달았다. 나는 그런 엄마가 답답했고, 이대로는 취업이 어렵다고 칼같이 말했다. 엄마의 표정이 시무룩해 보였다.

앉아 있는 엄마를 보자 7살이 된 내가 보였다. 애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애가 된다는 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엄마에게 내가 구구단을 처음 배웠을 때가 생각났다. 엄마는 매일 내게 구구단을 반복해서 2단, 3단을 노래 부르듯 반복하여 불러줬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구구단을 따라불렀다. 혹여 내가 틀려도 실망 않고 참을성 있게 앉아서 배울 수 있도록 두 손 꼭 잡고 알려줬다. 그 당시 나는 엄마와 잡은 두 손이 행복했고 구구단을 보름 만에 깨우쳤다. 

기억과 함께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에게 면접 대화 방법을 이해시키기 시작했다. "밥 먹었어?라고 물어보면 응 먹었어라고 하기보다 북엇국이랑 김치랑 달걀말이 먹었어라고 대답하는 게 더 자세히 친절한 느낌을 줘서 좋아."

이렇게 엄마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25년 전과 반대의 입장이 되어 엄마에게 나는 면접을 알려주고 있었다. 7살이 된 엄마, 7살 당시 엄마 나이 또래의 나. 엄마가 벌써 늙었구나 싶어 조금 슬펐다. 하지만 잘했다고 말해주니 해맑게 웃는 엄마를 보며 나는 다시 철부지 아들처럼 엄마를 따라 웃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면접 보는 방법을 이해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대화하듯 잘 면접관에게 말해주면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엄마는 그 후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붙자 모의면접은 너무나 쉬워졌다. 자기소개부터 마지막으로 할 말, 본인의 장점 등 면접 준비를 마쳤다.

다음날, 그다음 날 모두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나들이 겸 면접을 보고 왔다. 예상 질문이었던 지원동기부터 엄마는 잘 해냈다. 다른 지원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생계를 위해, 해보고 싶어서라 답했지만 엄마는 준비한 대답을 했다. 자신 있어 지원했으며, 왜 자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경력과 경험을 덧붙여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말에도 본인이 책임지고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며, 면접을 잘 해냈다. 엄마는 돌아와 적어도 한 곳은 합격할 것이라 예상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네"


면접 두 곳 중 한 곳에서 합격소식을 전했다. 서류 제출과 신체검사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9부 능선을 넘었다며 우리 가족 모두 기뻐했고 엄마를 축하했다. 합격하자마자 엄마는 서류를 준비했고 다음 날 신체 검진 예약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신체 검진에서 발생했다.

신체검진 결과가 당일날 나와야 그다음 날 마감인 신체검진 결과를 제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약 병원에서 당일 검진 결과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급히 엄마가 나와 누나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했다.

나는 검진이 가능한 10곳에 전화를 걸어 검진 결과를 당일 받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모두 안된다고 응답을 받았다. 답답해 누나에게 SOS를 청했다. 누나는 재빠르게 인터넷에서 당일 결과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예약을 했다.

검진은 오전까지 방문해야 당일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그 병원까지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로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예약 당시가 10시 45분. 촉박했다. 엄마는 급하게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엄마가 가는 동안 누나는 병원에 전화해 사정을 이야기했고 병원에 양해를 구했다.

 채용 공기관에 해당 상황을 설명했지만 본인들이 명시했듯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말로 불안하게 했다. 정규직보다 체계가 안 잡힌 청소 미화 채용이지만 배려가 많이 부족했다. 누나와 나는 화가 났지만 엄마에게 행여 불이익이 갈까 항의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진땀을 흘리며 택시에서 내려 뛰어가 병원에 오후 1시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오후 6시가 넘어 엄마의 신체 검진은 모두 끝났다. 엄마는 하루 종일 힘들게 신체검진을 받아 녹초가 되어있었지만 해냈다는 기쁨을 가득 안고 집에 왔다. 다음날 서류와 검진 결과를 갖고 엄마는 지방에 다시 한번 내려가 제출했다. 그리고 이틀 뒤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엄마는 누나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엄마에게 도움을 줘 좋았고, 엄마와 함께 해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비슷한 문제를 겪지 않을까?!"


채용 결과가 기분 좋게 끝나 행복했다. 하지만 돌이켜보았을때 가슴 한편에 씁쓸함도 남았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엄마의 일이 남도 겪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취업 수기를 올려 공유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울 수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니어의 삶에 관심이 갔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노년에도 회사에서 일을 하신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택시, 마트,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경비원으로 일하며 겪은 갑질들이 떠올랐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더 크게 벌어질 거 같은 사회문제 시니어 채용. 엄마의 최종 합격은 나에게 또 다른 시작일 거 같다.


자랑스러운 엄마. 고생했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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