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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Mar 31. 2023

23년 3월 30일

30개월 23일

지난 한 달은 마치 1년 같았다. 어린이집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며 긴장하고 기대했던 이달 초가 아득하다. 몰아닥치듯 모든 것이 지나갔고 도무지 안정될 수 없을 것만 같던 마음도 잔잔해졌다.


엊그제 놀러 온 사촌 동생과 이야기 나누다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불안을 마주했다. 자꾸만 어떻게 지내볼까 걱정하고 이리저리 검색하며 바쁘게 머리를 굴린 건, 퇴소를 옳은 결정이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임을.


어제는 너무 좋아하는 존박 노래로 아침을 열었는데, 웬일인지 우주가 노래를 바꾸라고 하지 않아서 한참 들을 수 있었다. 간만에 추억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새록새록 지난날의 내가 밀려왔다. 무엇이든 확신에 차 있던 옛날의 나는, 항상 아이는 무조건 세돌까지 품에서 키우고 싶다고 말해왔다.


세상은 그 사이에 너무 많이 달라졌다. 결혼 후에 맞벌이하지 않는 지인은 거의 없다. 아이를 집에서 돌보고 있더라도 돌아갈 직장이 있거나 다음 이직을 위해 무언가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의 아기들은 모두 두 돌 이전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우주를 키우면서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단연 어린이집과 관련된 조언이다. 언제쯤부터는 가야 한다, 또래와 지내봐야 사회성이 길러진다, 엄마랑 떨어지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 왜 아직도 안 보내냐, 가서 뭘 많이 배워온다 등등. 일단 구미가 당기는 조언은 단 하나도 없거니와 모두 다 100프로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건강한 유대를 쌓으면 사회성은 거기에서 길러진다. 그러는 동안 아이에게 충분한 지지와 용기가 쌓이면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갈 준비가 끝나고 그때 밖으로 나가서 맺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건강한 사회성이 길러진다. 일부러 떼어 놓고 몰아넣지 않아도 언젠가 아이는 엄마를 벗어나려고 한다. 연습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


내가 보는 우주는 예민한 오감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두려움이 높다. 서방구와 나의 아들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어떻게 느낄지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남들보다 좀 더 우주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 우주의 안전보호장치가 되어,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이 되어주고 싶었다.


어린이집을 심사숙고해서 원하는 곳에 보내기는커녕 아무 데나 넣어도 가망이 없는 환경은, 내 신념을 남에게 가려두고 우주를 더 품에 안고 있을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우주가 어린이집에 (사실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니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자 나는 나로부터 떨어져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신호탄이라 여겨서 찾고 찾아 어린이집에 보내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애가 하고 싶다는 대로 두면 떼만 는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부모에게 하는 원에 우주를 더 맡기고 싶지 않았고, 우주도 어린이집에서 처음으로 인생의 쓴 맛을 보고는 매일매일 등원을 거부했다. 보통 그것을 적응기간에 보일 수 있는 현상이라고 치부하는데, 그것도 참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없는 곳에서 온갖 감각을 통해 오는 불안을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기 싫은 일을 매일매일 하는 건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어른은 이미 자라면서 그것을 견딜 힘을 갖추고 있다. 그걸 당장 네 살에게 갖추라며 매일 지켜보는 나도 곤욕이었다.


어린이집을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는 강박으로 ‘어린이집 대신’이라는 검색어를 초록창에 넣었더니 ‘어린이집 대신 완벽한 엄마 품 놀이터’라는 책이 등장했다. 궁금해서 바로 사려다가 도서관에서 일단 빌려나 보자 하고 미뤘는데, 오늘 알라딘에 들른 김에 찾아보니 반값에 살 수 있어서 얼른 구매했다.


우주를 재우고 단숨에 반을 읽었다. 작가님은 나랑 생각이 같은 분이셨다. 아이를 금방 퇴소시킨 경험도 비슷했다. 제일 좋았던 것은 아이와 목적 없이 떠날 때 챙기면 좋은 준비물 목록이었다. 우주와 외출하면 우주가 원하는 바를 지도삼아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매번 끼니나 낮잠, 집안일 때문에 더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아쉬웠다. 돗자리와 도시락을 더 챙긴다면 종일 쏘다니다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졌다. 우주와 나의 시간에 목적을 없애자. 그것이 우리가 행복한 기억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퇴소 결정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나에게든 남에게든 증명할 필요가 없다. 옳았을 수도, 틀렸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우주 인생에도 내 인생에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내일은 퇴소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는 날이다. 보육료 문제로 말일에 처리해 주기로 했다. 서방구가 어린이집에 들러서 우주 짐을 받아오면 끝이다. 퇴소날이 되기 전에 마음과 생각이 모두 정리돼서 다행이다.


누군가 물어보면 방패막이라도 들이밀듯 올해는 문화센터나 프로그램 다녀보고 시간제 보육도 해보고 내년엔 꼭 유치원에 보낼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년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주랑 매일 신나는 여행을 하다 보면 계속하고 싶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우주가 이제는 정말로 엄마랑 그만 놀고 싶다고 할 수도 있고. 아무튼 그런 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일단, 놀자. 우주와 함께 춤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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