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넷 서른넷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문 Apr 25. 2023

네 살과 떠나는 캠핑 2

광교호수공원 가족캠핑장

올해 첫 캠핑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살과 나는 또 짐을 꾸렸다. 이번에는 남편 없이 가는 캠핑이다. 작년에도 남편 없이 떠나본 적은 있었다. 그때는 설치가 비교적 간단하고 낮은 텐트라 피칭이 어렵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 그걸로 가져가려 했는데 판이 커졌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남편 그리고 동생네 세 식구까지 놀러 오기로 한 것이다.


아직 바람이 찬데 우리 집 네 살보다 더 어린 아기가 왔다 간다고 하니 밥을 야외에서 먹이는 게 맘이 불편했다. 우리 가족이 다닐 때 쓰는 커다란 리빙쉘을 들고 가기로, 고심 끝에 결정했다. 남편이 텐트 칠 때 가만히 놀고만 있지는 않았으니 나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 입실 시간에는 네 살과 나, 그리고 친구까지 셋이 있었다. 4월 중 최악이던 황사바람을 호흡기로 죄다 빨아들이며 피칭을 시작했다. 지난번 양평에서도 바람이 매섭게 불더니 하필 그날도 강풍이 불어서 친구는 폴대를 붙들고 인간 팩이 되어 몇 번이고 텐트를 지켜냈다. 그 사이에 한쪽의 팩을 모두 박고 나서야 안심하고 작업을 이어갔다.


강풍과 더불어 사이트가 비좁아서 주차 자리까지 먹고 텐트를 치려니 보도블록 사이에 맞춰 팩을 박는 일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박아야 할 곳에 박지 못한 데다가 자리마다 단차가 생겨서 결국 텐트가 좀 팽팽해지기는 했는데... 그래도 펄럭펄럭 느슨한 것보다야 잘 된 것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친구에게는 첫 캠핑이었다. 한 시간 넘도록 텐트 치고 물건을 세팅하고 정리하니 오자마자 커피 끓여 먹을 생각이었는데 캠핑이 이런 건 줄 몰랐다며 웃었다. 우리 집 네 살은 익숙한 듯 펼쳐놓은 카트를 가지고 놀면서 오며 가며 과자도 먹고 캠핑을 즐겼다. 황사가 심해서 마스크를 씌웠는데 어느샌가 벗어던졌다. 다 같이 모래바람을 많이도 먹은 날이다.


커피 마시고 집에 남편을 데리러 간 친구가 돌아올 때까지 네 살과 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딱히 장난감이 없어도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장난감 삼아 노는 재주가 있다. 덕분에 캠핑하면서 그런 건 부담이 없다. 알아서 놀거리를 찾아낸다. 이번 캠핑에서 우리 네 살이 가장 흥미로워했던 것은 샤워장 키다. 여자 샤워실은 문을 잠가놓고 입실 때 받은 키를 이용해 들어갈 수 있는데, 나는 샤워실 문이 잠겨있다는 사실에 감동했고 네 살은 번호 적힌 키 하나를 얻어 행복했다.



한쪽은 대로, 한쪽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찐 도심 속 캠핑장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 고기파티를 시작했다. 친구가 푸짐하게 사 온 고기를 먹고 먹고 또 먹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서 떼왔다는 전구도 켜주니 정말 파티 같았다. 9시 가까이 되니 너무 추워서 바깥 테이블을 철수하고 텐트로 들어갔다.


친구 동생네 식구들도 저녁 시간에 다녀갔다. 아기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부모가 모두 애먹었다. 많이 먹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아이를 케어만 하다 간 것 같아 아쉬웠다. 그 맘 때 생각이 나서 더 짠했다. 한창 정신이 없었지.






1박이라 안 씻고 자려고 했는데 황사와 강풍을 맞은 네 살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샤워실에 드라이기가 없어서 머리를 못 감았으니 별 의미는 없었지만 따뜻한 물로 몸을 녹여주고 개운하게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당연히 나는 샤워 패스.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친구와 셋이 남았다.


최저 기온이 3도로 예상되어 차박을 시도해 보려던 친구는 우리 텐트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선임이 빌려주셨다는 전기 매트를 깔고 온풍기를 돌렸다. 친구가 엄청 많이 챙겨 온 핫팩도 열심히 흔들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네 살과 나는 한 이불 덮지 않고 1인 1 침낭으로 누웠다. 침낭은 자고로 속에 들어가야 따뜻한 법이니. 오늘은 왠지 따뜻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의 캠핑장에서 잠을 자는 팀은 우리 포함 다섯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조용한 밤이었다. 대로에서 나는 소음도 새벽에는 고요했다. 텐트 속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네 살도 뒤척이지 않고 곤히 잘 잤다. 친구도 푹 잤다고 했다. 나만 화장실 가고 싶어서 깼나 보다. 왜 이렇게 자주 가고 싶은 것인가. 캠핑의 밤마다 너무 불편하다.





아침은 역시 된찌에 누룽지였다. 늦게 먹는 바람에 철수도 늦어졌지만 캠핑장이 한산하니 딱히 제재 없이 봐주시는 듯했다. 철수할 때마다 남편이 엄청 힘들어했던 게 생각나서 정리하는 내내 긴장됐다. 결국 뭔가 잘 안돼서 너무 오래 걸리거나 짐을 못 싣게 되거나 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다행히 문제없이 깔끔하게 정리를 마쳤다. 덕분에 옷가지가 들은 개인 짐은 막 그냥 쑤셔 넣어왔지만 그런 건 집에 와서 다 꺼내니까 상관없다.


친구에게 소감을 물으니 자기는 캠핑 체질인 것 같다며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 길로 친구는 차량 도킹 텐트와 기본 장비들을 구매해서 며칠 후 바로 차박을 떠났다. 친구가 너무 좋아해 주어서, 우리 네 살과 내 친구가 더 가까워져서, 나 혼자서도 텐트를 치고 접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기뻤던 캠핑이었다. 도심 속이라 오고 가는 길의 피로가 없었던 것은 덤!





불멍 못하는 캠핑장에서 가짜 불멍


매거진의 이전글 네 살과 떠나는 캠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