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될 작정인가.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공황장애여.

by 마이문

처음 중학생 때, 어른들 사이에 껴서 마피아게임을 하다가 처음 경험한 공황. 그 당시에는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개념이 아니어서, 눈을 뜨고 보고는 있으나 현실이 아닌 듯한 당혹스러운 패닉상태를 엄마 옆에 누워 눈을 꼭 감고 지나가도록 두어야했다. 그 다음 증세는 2-3년 뒤에 발현되었다.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였는데, 막연히 영어와 수학 점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진학 후 몇 개월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직후라 그랬는지 딱 그 두 과목의 시험날 패닉이 찾아왔다. 문제를 읽자니 숨이 가빠졌고 눈을 감으면 호흡이 점차 안정을 찾았다. 시험지 앞장만 어찌저찌 풀어내고 나머지는 같은 번호로 찍었다. 뭐, 결과적으로 공황덕분에 '진짜 중요한' 두 과목은 망쳐버린 셈이다.


이제껏 겪어왔던 공황증상에 관해 머리 밖으로 꺼내어 관찰하고 글로 적어보기는 첫 발현 이래 16년만에 처음이다. 그간은 머릿 속에 꽁꽁 숨겨두고 몰래 몰래 잠시 들여다보았다가 이내 다시 꽁꽁 숨겼다. 나의 경우에는 공황증세가 16년 내내 있던 케이스는 아니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갔을 때,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연애 도중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때, 난생 처음 해외에서 홀로 서기에 도전했을 때, 결혼 준비로 예민해졌을 때 등등 아주 굵직한 사건들에 스트레스가 폭발하면 그 후로 몇개월간 증상이 지속되었다가 상황이 나아지거나 심적으로 안정이 되고 나면 증상 역시 가라앉았다.


잘 숨겨 놓고 잘 처리하며 잘 덮어두고 살다가 갑자기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공황장애가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은 처음 복용 당시에 효과가 있다고 느꼈지만 곧 약을 먹어도 증상이 나타나 증량해야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찾게 된 건 한의원. 내가 겪는 공황증상의 원인은 담의 허약함 때문이라 했다. 3개월간 담을 건강하게 하도록 1주에 3회 침치료를 진행했고, 보약을 매일 먹었다. 치료받을 당시는 결혼준비가 한창일 때였다. 그러나 이몸은 백수였고 생전 처음 써보는 금전적 지출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을 느끼던 중이었다. 이런 나를 안고 평생을 살아야하는 신랑에게도 미안하고, 모아둔 돈이 없어 결혼할 때까지 기어코 엄마 아빠의 등골을 빼먹는 딸이어서 미안하고, 낭만있는 인생을 살겠다고 큰 소리 뻥뻥 쳐댄 20대 초중반이 만든 결과가 이렇구나,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상황과 상관없이 한의원에서 받은 치료와 한약 덕분에 약속한 3개월만에 증세는 10번 중 1번 발현될까 말까 한 상태로 호전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결혼식 당일에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다면 '결혼식 도중 쓰러진 신부'로 시작하는 어떤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을 그날에도, 나는 무사했다.


그렇게 2년 하고도 2개월을 넘어가는 결혼생활 동안 이렇다 할 증상 없이 잘 지냈다. 그러다 다시 패닉을 경험한 건, 올해 1월. 거제도로 친구들과 다녀온 3박 4일의 여행의 마무리였던 고속도로 운전 도중이었다.


운전이 가능한 친구 둘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나를 걱정하던 한 친구만 깨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주고 있던 상황. 끝 없이 이어지는 2차선 고속도로와 아무리 앞질러도 계속 등장하는 화물차들 사이에서 갑자기, 아주 오랜만에, 그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는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고 잠시 쉴까 말까를 계속 고민하던 중 마지막 휴게소는 지나쳐버렸다. 앞으로 40분간 휴게소는 없다는 걸 직시한 순간, 노래를 바꾸어보아도 친구에게 말을 걸어보아도 패닉은 쉽사리 지나가지 않았다.


10분정도 더 가니 다행히 졸음쉼터가 등장했다. 차가 멈추니 잠들었던 친구들이 일어났고, 더이상 운전이 어렵다고 하자 한 친구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뒷자리에 탔는데 출발 하자마자 나는 기절하듯 잠들었고 그렇게 악몽같은 순간이 지나갔다.


그로부터 5일 후, 뱃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 그래서 몸이 견디지 못했던 거구나. 나는 몰랐지만 몸이 힘들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삼고 그날의 기억은 헤프닝으로 보내주려 했다. 하지만 공황이란 그렇게 쉽사리 나를 놓아주지 않는 법.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아니 차에 앉자마자 비현실감이 찾아왔고 손에는 다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나아지지 않아서 얼마전까지 아예 운전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공황이 다시 시작된거랑 글로 정리하는게 무슨 상관이냐. 정말 낫고 싶다. 뇌에서 쥐가 나는 기분, 살아있으나 죽은 듯한 느낌, 모든 시각 정보가 아지랑이 처럼 울렁울렁 희뿌얘지는 순간, 손에 땀을 쥐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 벗어나고 싶다.


공황장애 후기를 열심히 검색해보았다. 어떤 분이 자세히 본인의 경험과 상태 그리고 극복했던 일화들을 정리해둔 글을 보았다. 그리고 든 생각은 그거였다. '아, 사실 나는 내 상태를 인정한 적이 없구나.' 괜한 트라우마가 될까봐 글로 남기고 싶지 않았구나. 트라우마는 이미 겪은 순간부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혹시나 글로 적으면, 트라우마가 아니라 기억이 될까 싶다. 새로 이사온 동네는 차가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다. 장을 보러 갈래도 10분씩 차로 나가야하는 동네. 나와 나의 공황에게 좋은 기회로 삼기로 했다. 한의원 원장님은 용기를 주셨다. 지금 몸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를 보신 이래 최상의 상태라서 아마 그 공황증세가 오더라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며 해를 끼칠 수 없을거라고.


어제는 비교적 먼 거리, 15분 이상 걸리는 친척언니네 집에 혼자 차를 몰고 다녀왔다. 덕분에 알게 된 특징 중 하나는 차들이 많이 서있는 빨간 신호에서 증세가 발현된다는 점. 다른 건 제쳐두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를 생각해보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려 하지 않고 남은 숨 마저 뱉으며 마음을 바닥으로 내리듯 안정시켜주는 법. 그리고 좋아하는 찬양곡을 따라부르는 법. 현재는 이 두가지가 꽤나 실효성 있는 극복법이다.


스스로 증세에 대해 정의내리지 못한 채 공황장애를 인생의 동반자처럼 안고 살아가는 나와 내 동생을 비롯한 동시대의 모든 이들이 증상에 관한 두려움 없이 안정된 나날들을 보내길 오늘도 간절히 바래본다. 계속해서 부딪혀볼 생각이다. 아마도 나는 증상이 심한 편은 아니기에 가능한 극복방법이겠지. 트라우마를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고 계속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는 시도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가능하면 이 또한 지나갔다는 후기를 멋지게 남겨보고도 싶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공황.

매거진의 이전글임신부, 이제 중반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