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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Lu Oct 15. 2017

잔치국수는 잔칫날에만 먹기로했다.

이래서 잔칫날 먹는 국수, 잔치국수 


 날이 부쩍 추워졌다. 주말 아침 온몸을 다해 늦잠을 자려 했지만 창문에서 스멀스멀 들어오는 찬바람이 기어코 깨운다. 밤새 퀘퀘히 막힌 목구멍을 '케켁'거리며 뚫어보다 든 생각.


'아, 뜨끈뜨끈한 멸치국물의 잔치국수 생각난다.'


주말이면 '뭐 먹지'와의 싸움. 오늘은 메뉴가 먼저 생각나 엉덩이 가볍게 침대에서 뽈끈 일어난다. 멸치며 다시다며 골고루 들어있는 다시팩을 냄비 한가득 담은 물에 먼저 넣어두고, 옆에서는 고명들을 송송 썰기 시작한다. 냉장고 필수품 애호박부터 꺼내 들고 서툰 칼질로 길게 슥슥, 당근도 꺼내 들고 길게 슥슥, 양파도 꺼내 들고 길게 슥슥. 어디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지단도 만들겠다고 계란을 휙휙 저어 옆에 준비해둔다. 가만 보자, 순서를 어떻게 정해야 하지. 옳타니, 우선 육수를 끓이고 그 사이 고명을 볶아보자. 육수가 끓어오르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국수를 끓이고, 다 삶아지면 찬 물에 식혀보는 것으로. 


결혼 6개월 차, 요리도 6개월 차. 가스레인지에 불이 3개나 돌아간다는 것은 아직은 부담스러운 일. 미리 머릿속에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어디 선간 탄내가 가득 올라오고 어디 선간 끓어 넘치는 일이 다반사다. 물론, 아무리 머릿속에 순서를 정해본 다한들 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 주방일. 


다시 백을 넣어둔 육수에 큼지막히 자른 무와 반으로 자른 양파, 물에 불려둔 표고버섯을 넣고 불을 지핀다. 다급해지기 전에 먼저 김치부터 처리하자. 어머님이 담가주신 김치를 꺼내 송송 잘라 참기름 두르고, 깨 솔솔 털어서 준비 끝! 그리고는 국수를 삶을 물에도 불을 올리고 지단은 식혀야 하니까 가장 먼저 프라이팬에 올린다. 지단은 이미 여러 번 성공해서 가장 자신 있는 메뉴 중 하나! 올리브유를 한번 두르고 키친타월로 닦아준 뒤, 그 위에 계란물을 휘리릭! 불은 가장 약하게 올려둘 찰나 육수가 끓어오른다.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안 된다 했으니 다시 백은 먼저 건저 두고 야채 육수가 더 우러나길 바라며 불은 중간으로 조절한다. 아차차, 국수 삶을 물도 끓는다. 아차차, 지단이 타려 한다. 우선 국수를 넣고 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니, 국수 삶을 물은 불을 잠시 줄이고 지단 먼저 뒤집는다. 프라이팬 불은 꺼버리고 프라이팬에 남은 열기로 나머지 지단이 익기 발하며 국수를 준비한다.


앞뒤로 잘 익은 지단은 도마에 꺼내서 한 김 식혀주고, 펄펄 끓어오르는 냄비에 국수를 넣어주고 프라이팬에도 다시 기름을 두르고 썰어둔 애호박을 넣는다. (아오 정신없어) 국수물이 또 보글보글 끓어 올리기 전까지는 잠시 괜찮다. 한 숨 돌리면서 애호박을 휙휙 저어주던 차, 육수를 맛보니 밍밍하다.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랬으니 국간장 3 숟갈을 넣고 간을 봐본다. 아차차, 국수가 끓어오른다. 서둘러 찬 물을 조금 넣어주고, 아차차, 애호박이 타려 한다. 서둘러 애호박도 구사일생 꺼내 주고 이번에는 썰어둔 당근을 넣는다. 아차차 국수가 또 끓어오른다. 이제는 꺼낼 차례, 준비해둔 체망에 국수를 부어주고 찬 물에 벅벅 손으로 씻어준다. 아차차, 당근! 


다급히 당근을 앞뒤로 볶아주고, 조금 더 익어야 하는 당근은 잠시 그대로 방치하고 지단을 송송 썰어본다. 왠지 국수가 양이 적을 것만 같다. 몇 주 전에 사놨던 유부초밥을 해야 하나 고민한다. 에라이, 하자.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유부초밥을 꺼내온다. 아차차, 당근!!!


후다닥 당근을 꺼내 주고, 마지막으로 양파를 볶는다. 양파는 금방 익으니까 너무 오래 두면 안 된다. 그 사이, 국수를 면기에 담아주고 양파도 꺼내 준다. 다 익은 햇반을 꺼내 둥근 볼에 담고 유부초밥에 들어있던 양념들과 식초를 부어 숟가락으로 저어준다. 밍밍한 육수가 영 마음에 걸리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듯하다. 물을 많이 넣었나, 자책하며 유부를 벌컥벌컥 열어젖히고 밥을 한 숟가락씩 대충 넣는다.


신랑이 그제야 나와서 주변 주변 거린다. 상 좀 차려달라 말하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손에 쥐어주고 주방에서 내쫓는다. 무슨 유부초밥이 이리도 많을까. 1/4 쯤 유부초밥을 넣다가 남은 유부는 그냥 칼로 송송 썰어서 국수 위로 올린다. 고명들도 얹고 나니 제법 '잔치국수' 티가 난다. 육수를 국자로 올려서 드디어 마무리. 또다시 주변 주변 거리는 신랑에게 김을 잘라 올리라 부탁한다.


앞으로는 잔칫날에만 먹자, 잔치국수


유부초밥과 잔치국수 두 그릇 식탁에 올리고 나니 뭐 이리 피곤하담. 이래서 잔치국수는 잔칫날에만 먹었나 보다. 옛 선조님들의 지혜는 함부로 무시할 게 아니다. 앞으로 잔치국수는 잔칫날에만 밖에서 얻어먹기로 한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살림'은 정말 피곤한 일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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