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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베 May 11. 2024

초원 위의 집

두 여자가 정착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룬 곳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이 있었다.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을 갖는 것이었다. 어떤 집이어야 할지는 구체적으로 몰랐지만 초원과 나무는 필수로 있어야 했다. 그 안에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한 여자,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함께 지내는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지금, 내가 사는 집의 창밖엔 광활한 자연이 펼쳐져 있다.





 봄에는 노란 민들레와 보라색 제비꽃이 초원을 가득 채우고, 새들은 아침저녁으로 끊임없이 노래한다.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새싹들은 소리 없이 피어난다.


 여름에는 태양이 내리쬐어 푸른 들판을 환하게 비춘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곳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더위를 맞이한다. 잔디밭에 커다란 비치타월을 깔고 누워 햇볕을 쬐다가 너무 더우면 그늘로 옮겨 앉아 시원한 물을 마신다. 저녁이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몰아내고,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여름밤을 가득 메운다.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은 괜스레 그리움을 자아낸다.

 가을이 되면 안개가 자욱한 날들이 점점 잦아진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켠다. 숲 속에는 다양한 색깔의 버섯들이 이끼와 낙엽 사이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바구니에 버섯을 가득 채우고, 좋아하는 바위에 앉아 들판을 바라본다. 어느덧 대지에 들풀들은 황톳빛으로 변했고, 낮게 깔린 잿빛 하늘은 세상을 묵묵히 감싼다.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린다. 따뜻한 집안에 촛불은 타들어가고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들으며 핫초코를 마신다. 창밖에는 시린 눈발이 휘날리지만, 집안에 있으면 그저 아늑할 따름이다. 주말에는 동반자와 함께 흰 눈이 덮인 숲 속에서 모닥불을 지피고 스웨덴의 뱅쇼 '글뢰그'를 데워 마신다.




 내가 살고자 했던 곳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이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나 자신도 대자연의 일부임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맑은 날, 비 오는 날, 추운 날, 더운 날, 안개 낀 날, 천둥번개가 치는 날. 그 모든 날들이 각자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니 무엇이든 거부하지 않고 반가이 맞이하게 된다. 하늘의 빛깔은 매일 달라지고 떠가는 구름은 언제나 형상을 바꾸는데, 세상에 모든 일들도 사실은 이와 같다. 이로써 일상 속 크고 작은 일들을 시간과 함께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실은 겨우 16평 남짓의 작은 크기에다가 거실도 방도 화장실도 딱 한 개뿐인, 시내에서 뚝 떨어진 변두리에 집일 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나의 꿈을 현실로 이뤘다고 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와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 속 순간들은 나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비록 팍팍하고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집에서의 휴식은 마음의 평화와 균형을 찾게 해 주고, 느긋하고 다정한 태도로 타인을 대하게 해 준다.


 물론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시내에 아파트들이 살기 더 편하고 투자가치가 높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집을 갖기 위해 열정과 욕심으로 나를 불태우는 삶을 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그런 장소에 살고 싶은가?라고 물어보면 이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나은 무언가를 차지하고자 집을 투자 대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 그것이 내가 바라는 가치이다.




 오늘도 한국에선 부동산에 대한 뉴스가 끊임없이 화제가 된다. 집으로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잃었는지 하는 얘기, 어느 지역의 시세가 오를 것이라는 얘기.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살고 싶은 집에 사는 것.


이 단순함을 세상은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이 세상 집들에 낭만이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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