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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래 Dec 05. 2020

내가 몰랐던 이야기

할머니의 시간

하루라는 이름은 또다른 하루의 사이에서 그 경계가 허물어져 간다. 반복되는 할머니의 하루는 하루의 의미를 잃고 무뎌져 오로지 드라마로 일주일을 기억하며 할아버지의 제사로 일년을 기린다. 이제는 아버지의 기일이 더해졌다. 사건으로 인생을 추리고 남은 기억들로 삶의 길이를 가늠한다. 기억나는 일들이 줄어들수록 삶은 짧아지고 반복되는 하루가 많아질수록 하루는 더 길어진다. 하루가 일년같고 일년이 하루같은 할머니의 삶은 첫페이지를 펴자마자 마지막 페이지로 치닫는 마법같을 것이었다. '인생이 어찌 이렇게도 흐르냐.' 할머니의 읊조림은 허망함도 무덤덤함도 아닌 세월에 대한 실증적인 체감이자 일컴음이다. 할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몇 년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같이 들여다 보면서도 몰랐던 베란다 앞에 놓인 소나무가 일곱그루 라는 것. 서재 창가에 훤칠한 나무가 매실나무이며 안방 창밖에는 벚나무가 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바로 아셨다. 봄날 비 내린뒤 고인물에 노랗게 담긴 먼지가 송진 가루라는 것도 할머니가 알려주셔서야 아내는 알았다. 머리가 나빠지는것 같다며 걱정하시는 할머니는 곳곳에 솟아오른 나무와 잎사귀, 그리고 지하철역으로 기억력을 더듬었다. 골똘히 다녀가셨던 길들을 떠올리고 그곳에 몇그루의 나무가 있었는지 어떤 꽃들이 피었는지 이야기 하고, 어느 집을 찾아가려면 어느 역에서 어떤 지하철을 갈아타고, 어떤 골목을 지나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되뇌이듯 알려주셨다. 대부분의 목적지는 내가 잘 알지못하는 옛날 할머니의 기억속 동네다. 생생한 기억에 의존하는 할머니에게는 지도도 노선도도 필요치 않다. 어려운 시절 배움이 부족했음에도 글을 읽으시고, 비록 많이 틀리지만 쓰시기도 한다. 

그토록 총명하신 할머니가 늙는것이 낯설고 늙어 자식에게 짐이 되는것을 걱정한다. 이제는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전보다 크게 말한다. 잘 못알아 들으셨을 때 다시 되묻는 것을 민망해하신다. 양쪽의 말소리가 커지니 대화좀 할라치면 텅빈 집안이 시끌시끌하다. 그럴때마다 '내가 나이가 먹을수록 주변사람들을 귀찮게 하는구나' 미안해하고, 난 그모습을 보며 슬프다. 

좋아하시는 칼국수 국물덕에 모처럼 깨끗이 비워낸 그릇을 보며 고단했던 할머니의 삶을 위로한다. 8000원짜리 칼국수를 드시며 비싸다 걱정하는 할머니 앞에서 지금까지 내 목구멍으로 넘어간 기름진 음식들이 숨을곳 없다. 10여 년 세월 홀로 나를 키워내시던 어느날, 허리가 아파 누워있는 할머니를 두고 밤새 난 어디서 방황하고 있었나. 생각하면 잔인하고 고개 저으면 슬퍼지는 지난날에도 할머니는 매일밤 토마토를 썰어놓고 나를 기다렸다. 삐뚤빼 적어놓은 할머니의 글씨에 눈물을 흘렸던게 벌써 15년이 지났다.


할머니에게 있어 삶은 사는것이 아니라 살아진 것이다. 러닝머신 바닥이 돌듯 삶이 저절로 흘러졌고 어느새 사계절도 87번을 훌쩍 돌았다. 강제로 살아진 삶속에서 두 아들을 앞세워 보낸 할머니에게 남은 삶은 어떤 의미일까. 할머니는 나를 통해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당신의 삶을 질책한다. 

'이동네에는 노인들이 없구나.' 두리번거리시는 할머니는 아이들과 신혼부부만 가득한 신도시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집안에도 노인은 없고 젊은이만 있다. 나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드릴'뿐이다. 대화를 통해 온전한 교감이나 정보교환이 아닌 '노력'이 필요한 대화가 된다. 한가지 화제가 길게 이어지지 않고 할머니의 말씀을 듣는다. 할머니의 몸 구석구석 아픈 이야기, 약 이야기, 동네 할머니들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끼는 내자신을 인식하고 화들짝 놀랐다. 할머니가 나를 어떻게 키워주셨는가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어 흔들고는 다시 말씀을 듣는다. 

할머니는 집에 머무시는 몇 주 동안 집안에서도 거실에서 계속 자켓을 입고 계셨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시는 할머니기에 집에서도 격식을 차리신다고 여겼을 뿐 여쭤보지 않았다. 그런데 집이 추워서 그런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내 이기적인 기준으로만 할머니를 보아온 것이다. 그간 할머니는 떨고 계셨고 나는 몰랐다. 긴 세월 할머니와 살면서 지금까지 내가 놓친 진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할머니와 대화를 한다고 할머니와 마주앉아왓던 시간이 모두 다 헛것이다. '우리어머니는 사과 씨만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불효자를 나는 비웃을 수 없게 되었다. 

터벅터벅 돌아오는 퇴근길에 집에 아무도 없는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이제오냐'며 환히 맞아주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참 오랜만이다. 다시 고등학교때로 돌아간것 같아 눈을 비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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