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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 백 Dec 09. 2021

보물 찾기와 같은 일

[아이패드 인물화] 명확함과 생동함 사이에서

::아이패드 인물화::

 연구작 20211115

연구작 - 인물화 완성, 2021, Digital Painting/ipad Pro/Procreate


인물화 표현에 대한 연구작입니다. 조금은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그려보려고 노력해보는데, 그 과정이 보물 찾기처럼 느껴집니다.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또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한 그런 거 있잖아요. 아무튼 이번에 찾아낸 것은, 이 그림입니다.


그렇게 찾아낸 그림, 그러니까 최종 완성된 그림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느낌이 살짝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계열의 색과 일정한 톤으로 단정한 느낌을 주는 원본의 모델에 비하면, 이 그림의 인물은 살짝 화려한 느낌을 더 담고 있습니다.(원본 모델이 담긴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드리면 더 좋았겠지만, 저작권 때문에 이 글에 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매번 연구를 할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기존에 하지 않았던 방식을 적용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도 초기에는 조금 추상적인, 쉽게 이야기하면 인상파 그림 같은, 느낌으로 그려보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른 변화가 너무 미미해서 그리는 사람만 알고, 보시는 분들에겐 티가 나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런 작은 경로의 변화가 쌓이다 보면, 결국 후에는 눈에 띄는 개성으로 발전하는 것이니까요. 아래의 초벌 채색(밑 색) 버전이 그런 흔적 중 하나입니다. 


연구작 - 인물화 초벌 채색, 2021, Digital Painting/ipad Pro/Procreate


이 단계에서 형태 변화에 의도성이 느껴지게 다듬고, 좀 더 보기에 아름다운 색이나 주제를 잘 표현하는 색을 적용해서 완성을 하면 처음에 목표했던 그림을 찾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두 가지 측면에서, 조금 더 실제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지금의 방향으로 목적지를 변화시켰습니다.


두 측면 중 하나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방향 그대로 진행시켜서 완성했을 때, 과연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그림이 될 것인지 말이죠. 아마도 목표한 느낌으로 그려내긴 하겠지만, 그렇게 예상되는 완성본의 느낌이,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원본 속의 인물이 가지고 있는 둥글둥글 인상과 안정적인 외형을 담고 싶다'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것입니다. 원본의 인상을 파괴해서 더 큰 개성을 가져와야 목표한 지점에 도달할 텐데, 원래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는 욕구를 이기지 못한 것이죠. 원본의 인상과 형태를 파괴하면서도 원본의 가진 매력을 동시에 담아내기에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직은 역량이 모자랐습니다.


- - -


어쨌든 그런 생각들을 거쳐서 완성을 한 그림을 한 참 바라보았습니다. 일단 사진 같지 않게, 그림의 느낌이 더 들도록 그린 것이 확실히 티가 나는 점은 좋았습니다. 또 어느 정도 형태나 위치의 부정확함을 추구한 것(추상의 느낌을 살짝 담으려고)이 은근하게 적용된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색도 의도한 대로 담겼고요. 


그런데 무언가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저의 시선이,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한 듯이 다소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화려한 느낌은 생각했던 대로 잘 담겼지만, 아무래도 약간의 추상적 느낌을 더해보는 것에 초점을 크게 두다 보니, 그림의 강약이 정석적으로 정리가 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화려함을 위해서 강조점(포인트)을 여러 군데에 넣다 보니 시선이 분산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강조점의 요소인 색과 밝기 중에서 어떤 것이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림을 아래처럼 흑백으로 변환시켜 보았습니다.


연구작 - 인물화 흑백 변환, 2021, Digital Painting/ipad Pro/Procreate


어떤 것이 문제인지 이미 눈치 채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흑백으로 보았을 때가 색이 있을 때 보다 더 시선이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더 편하게 감상이 되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흑백일 때 특별한 문제점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감의 정확도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저의 경우 양감, 그러니까 그림의 입체감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는 편입니다. 입체적이지 않으면서도 실제감이 살짝 드는 그림이, 현재 제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이 그림은 오히려 의도한 것보다 양감의 표현이 더 들어간 편입니다.) 


색을 뺀 흑백일 때는 앞서 있던 문제가 사라졌으니, 명암의 문제이기보다는 색과 관련된 문제로 판단이 됩니다. 형태와 색의 부조화가 문제인지, 색만의 문제인지는 좀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이번 그림은 과감함, 색의 적용, 형태의 왜곡 등, 그림을 그릴 때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도 하게 했지만 마지막의 흑백 변환 시의 차이점을 통해서, 창작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일상의 표현(대화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했습니다. 


흑백 변환을 통해서 새삼 생각하게 된 것을 글쓰기에 비유해 본다면, ‘의도한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전해야 한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려 하거나, 소위 있어보기 위해서 글을 꾸미느라 또는 주제와 상관없이 자신이 아는 내용으로 글의 양을 채우느라, 중언부언함으로써 주제를 놓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들 말입니다. 물론 간단명료하면서도 또한 잘 읽히게 하는 나름의 효과적인 표현법 역시 참 필요한 것이지만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취하게 되는 태도 역시, 허례와 허식과 같은 것보다는 담백한 진심을 담는 것이 더 좋은 관계를 만드는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진심은 때로 충격이 되기도 하기에, 그것이 일종의 폭력이 되지 않도록 상황에 잘 맞는 센스라는 포장지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말씀드리다 보니, 문득 청개구리와 같은 생각이 결론처럼 들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느낀 바가 있긴 했지만, 그런 깨달음이나 생각하게 된 것들을 꼭 ‘도식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림이든 글이든 삶이든 그것이 도착이나 완성이 아닌 '길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과정' 중에 있을 때라면, '도식적인 적용'이나 '반드시'로 유발되는 의무감은, 오히려 시야를 가리는 강제적인 틀이 되기 쉽고, 그래서 또 다른 일방향의 경직된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삶도 글도 그림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생각해 왔음에도, 그렇습니다. 머리속에서 전해지는 충분하지 않았다, 더 충실해야 한다는 이성의 소리도 귀담아듣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아직은 조금 더, 그런 의무감과 책임감으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해 줄 생각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갇혀있던 마음이기에, 너무 더딘 걸음 아닌가 싶은 노파심이 들기도 하지만, 전에는 해보지 못했던 위로를 먼저 전해보려 합니다.


글의 말미에 서서 가만히 글을 되돌아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글도 이번 그림과 꼭 닮아있음에, 피식하고 헛웃음이 납니다. 뭐, 이 글 역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하나의 과정이니까요. 그렇게 한 동안은, 흑백의 명확함 보다는 생동하는 어설픔이 담긴 발자욱들을 남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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