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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대 언니 Oct 30. 2020

회장님 회장님 회장님

이건희 회장님을 추모하며

언제 부고가 날아와도 놀라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해왔건만,.

참으로 날이 좋은 가을날, 날아온 부고는 가슴한쪽을 뻐근하게 만든다.

내가 회장님과 마주친건 살면서 딱 두번이었다.


1995년 부산, 삼성전자 사원 3년차

256디램 성공이후 반도체 부문의 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Profit Sharing 이라는 방법이 도입되기 전

회사가 남아도는 이익을 임직원 복지에 쏟아 부을때, 만원만 내면 특급호텔 숙박이 가능한 시절이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부산 그랜드 호텔에 묵었는데,

로비에서 강아지를 안고 막 산책에서 돌아오시는 듯한 회장님과 코앞에서 맞닥뜨렸다.

나도 모르게 90도 인사를 했다

회장님은 매우 흐믓한 미소로 답례하셨다.

안고계시는 강아지의 둥글고 까만 눈동자만큼이다 또렷이 빛다는 회장님의 눈동자가 기억에 남았다.


세 딸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셨듯이

회장님께서 나서서 여사원들의 유리 천장을 허물어 주셨다


삼성전자에는 지역 전문가라는 제도가 있었다. 유능한 사원을 외국에 파견하여 회사 업무에서는 손을 떼고, 1년간 어학능력과 문화를 배워 돌아와서 그나라의전문가가 되어 향후 그나라의 주재원 pool로 활용되는 과정이었다.  내가 속해있던 해외영업본부는 매년 수십명을 지역전문가에 파견하면서도 한번도 여사원을 파견한 적은 없었다

96년 인사팀 대리가 면담을 요청했다. 회장님 지시로 여성지역전문가 파견을 추진중이라며 지원할 생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회장님 지시로 그해에 세명의 여성 지역전문가가 파견되었다. 그렇게 스물일곱의 나이에 지역전문가로 스페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후 지역전문가에서 돌아온 이후 10년 뒤, 마침내 스페인 법인 주재원으로 파견될수 있었다.


13년 12월 나는 임원 승진을 하였다. 그해 처음으로 공채출신 여성임원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주재원으로서의 해외법인 영업 경험과 귀임후 마케팅 성과를 인정받았다.

회장님이 주신 기회가 아니었으면 이루지 못할 일에 대해 역시나 여성임원 양성이라는 회장님 지시로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남자들 사이에서 치마입고 (여성이고) 아프리카 다녀오면 (오지에서 고생하고 오면) 임원된다는 농담이 돌았을까.


14년 1월 나는 두번째로 회장님을 뵈었다.

처음으로 참석한 임원 신년 하례회였다. 부축을 받아 내게로 걸어오셔서 악수를 청하셨다. 

오시는 걸음이 힘겨워보였고, 내민 손은 차가왔다.

회장님 건강하십시오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회장님은 그렇게 그해 임명된 신입 여성임원 하나 하나에게 걸어가시면서  일일이 악수를 청하셨다.

회장님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 오기가 쉽지 않았을 우리들을 직접 찾아서 격려해주신다.

20년전 보다 더욱 인자해지신 모습이었다.  


일반인의 조문은 받지 않는다는 기사에

퇴사한 신분으로 나는 감히 조문을 가지 못했다.


피천득의 인연처럼 세번째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세번째 만난다면 "당신 덕분에 성장하였고 행복했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을 것이다.

반평생 동안 마음으로 의지하며 존경해온 어른을 잃은 황망함이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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