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6
나는 생리통으로 불면증, 편두통, 소화기 장애(설사, 변비, 가스), 근육통, 피로감 등등의 증상을 매달 겪는다. 생리 시작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증상은 2주 동안 이어진다. 매달 이와 같은 통증이 지나가고 나면 왜 내 몸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재생산을 위한 준비 과정을 쉬지도 않고 반복하는지 원망스러워진다.
출근한 지 4일째 광화문역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진행하는 '강제불임 규탄 기자회견'에 공감에서는 신입활동가 4명을 포함해 총 7명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집단수용시설 내 강제불임수술 등 성·재생산 부정의와 국가폭력 진상규명을 위해 공감이 주도해서 만든 '강제불임수술진상규명대책위원회'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이었다. 이 날은 우연히도 생리가 시작된 날이었다. 전날 비가 와서 예상보다 날은 추웠고 30분 정도 지나자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졌다.
총 6명의 발언이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발언자들의 목소리가 힘찬 것에 대비되어 그 몸이 추위에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 2명의 발언이 남은 상황에서 추위를 더 이상 못 견딜 정도가 되었고 '나는 대체 왜 여기 서 있는 걸까?'란 의문이 생겼다. 조용히 들고 있는 피켓을 내리고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는 유혹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왜 어떤 사람의 몸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침해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가,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말하는 '미래'란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비장애인으로 분류되는 나는 어떤 장애를 가지게 될 때 타인이 침해할 수 있는 몸이 되는가.....' 발언 속 문장들로 인해 내 안에서 끌어올려진 이와 같은 생각들이 나를 마지막 발언까지 간신히 버틸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재생산을 원하지 않는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이 나에게 재생산을 강제로 금지한다면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결과가 같더라도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조차 할 수 없다는 건 명백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누군가의 몸과 관련된 권리일 때 어떠한 선택의 강요는 몸을 향한 폭력과 분리될 수 없다. "눈부시게 불완전한"에서 일라이 클레어는 군사적 오염으로 인해 몸-마음이 형성된 한 여성과 나눈 대화를, 그녀가 쓴 문장을 소개한다.
이러한 불협화음 속에서 당신은, 당신의 몸-마음이 비극적이고 틀렸으며 부자연스럽다고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군사적 오염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는 법을 알고 싶어 한다. 쉬운 답은 없다. 우리는 격렬히 토론한다. 감정과 생각 모두 복잡하다. 우리는 당신을 위한 이 문장에 이른다. “나는 군대를 증오하고, 내 몸을 사랑해요.”
분명 더 이해하기 쉽거나 더 복잡한 슬로건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장은 핵심적인 질문을 드려낸다. 우리는 어떻게 장애와 불의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식물과 동물, 유기체와 무기물, 비인간과 인간을 막론한 모든 종류의 몸-마음을 훼손하고 바꾸어 버리는 이 불의를 목격하고, 명명하고, 그에 저항할 수 있을까?
p104, 일라이 클레어 지음, 하은빈 옮김, 눈부시게 불완전한, 동아시아, 2023
'장애와 불의를 동일시하지 않기'는 몸-마음이 훼손되는 사건에 맞닥뜨릴 때마다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이라는 일라이 클레어의 지적은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7장에서 일라이 클레어는 시설에서 '강제불임수술'을 당한 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말을 건다. 예컨대 어릴 때 '정신지체' 진단을 받았던 자신과 같은 진단인 '정신박약'으로 인해 시설에 감금당한 뒤 수술을 받은 '캐리 벅'에게 말이다.
말을 거는 일라이의 태도가 독자에게 주는 어떤 위안이 있었다. 캐리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에 사건 자체의 무게 때문에 읽기 쉽지 않았으나 분명 일라이의 작업은 이 일을 기억하는 이들을 바뀌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들이 겪은 일을 기억하고 그 일을 다시 명명하는 일 자체가 무엇보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남은 이들을 위로하고 생각을 바꾸어나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기자회견 또한 그러한 작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그날 동료들 곁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은 역시나 뿌듯하다.
출처: 장애여성공감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