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패션 캔버스]
미국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Adobe)가 10월 공개한 인터랙티브(상호 작용하는) 드레스가 화제가 되고 있다. 수많은 반짝이는 작은 조각들로 뒤덮인 이 드레스(사진)를 착용한 연구원이 움직이자 색상과 문양이 몇 차례 변화했다. 마치 컴퓨터나 휴대폰 스크린을 몸에 걸친 것 같았다.
이 의상의 비밀은 신소재와 센서, 인공지능(AI) 기술에 있다. 반사형 고분자 분산형 액정(PDLC) 소재로 만든 의상 표면의 조각들은 빛의 투과율을 조절해 색상을 바꿀 수 있다. 여기에 착용자의 움직임을 즉각 반영하는 센서와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을 연결해 문양의 변화가 무궁무진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의상을 구매하고 입을 수 있으려면 착용감이나 안전, 관리 등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의복에 적용될 수 있을 만큼 발전했음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패션이라고 하면 흔히 예술적 영감 아래 아름다운 디자인을 창조하는 일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 패션은 그 탄생부터 과학기술과 밀착해 발전해 온 분야다. 19세기 말 프랑스 패션 하우스 메종 워스는 재봉틀 보급에 힘입어 일주일에 수백 벌의 드레스를 제작할 수 있었는데, 오로지 수작업에만 의존하던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뒤이어 1930년대에 자동재단 장비나 오버로크 같은 특수 봉제기계가 개발되면서 지금의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것이 유행의 생성과 확산이 반복되는 패션을 강화시켰다.
속옷이나 안감, 스타킹에 주로 사용되는 나일론 역시 듀폰사의 연구 끝에 탄생한 신소재였다.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하며 실크보다 아름다운 섬유’로 소개된 나일론은 내구성과 탄력성이 우수하며 가볍고 세탁도 편리해 빼놓을 수 없는 의류 소재가 되었다. 레이온은 실크의 대용으로 개발된 소재인데, 오랫동안 부와 사치의 상징이었던 실크로 만든 옷을 누구나 입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패션의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정보기술(IT)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휴대용 기기와 의상을 접목한, 이른바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제품이 등장했다. 전자회사 필립스는 1999년 리바이스와 공동 연구로 휴대폰과 MP3플레이어, 이어폰을 장착해 음악을 듣거나 통화, 음성 인식이 가능한 ICD+ 재킷을 출시했다. 후세인 샬라얀은 예술적, 철학적으로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패션디자이너로, 2000년 봄여름 패션쇼에서 리모컨으로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는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전자섬유나 바이오 소재,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들이 융합해 패션을 변화시키고 있다. 패션은 앞으로도 이렇게 기술과 함께 계속 변모할 것이다. 패션과 기술 안에서 상상할 일이 앞으로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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