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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당일치기로 휴가를 다녀왔다

호숫가에서 끓인 라면 한 그릇, 그리고 천막 설치를 함께한 순간들

by 김종섭

월요일 늦은 아침, 집에서 30km가량 떨어진 주립공원으로 올여름 당일치기 휴가를 다녀왔다. 사실 이번 여름에는 별도의 장기 휴가 계획이 없었다. 지난 5월에 튀르키예로 9일간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까운 곳으로 하루 나들이만 다녀오기로 했다.


작은 가방에 라면 두 개, 열무김치, 그리고 후식으로 믹스커피까지 챙기니 그럴싸한 여행의 기분이 났다. 산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다처럼 넓은 호수공원이 펼쳐진다. 이른 오전이라 피크닉 테이블이 여유가 있어 호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 올 때마다 김밥이나 라면을 준비해 오는데, 주로 라면을 가져온다. 야외에서 먹는 라면 맛은 집에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특별하다. 한국에서 산과 바닷가에서 끓여 먹던 라면을 떠올리며 한 젓가락 후루룩 먹는 순간, 작은 휴가가 주는 행복이 스며들었다.

옆 테이블에는 여자들끼리만 피크닉을 왔다. 몇 명이 테이블 위에 설치할 천막을 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내는 먼저 그들에게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물어보고 도와주라고 했다. 의사를 묻지도 않고 도와주는 건 실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천막을 설치한 뒤 돌아온 말은 짧지만 힘 있는 “땡큐(Thank you)” 한마디였다. 그 소리에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문득 한국 피서지가 떠올랐다. 야외에서라면 모르는 이웃과도 금세 정을 나누고, 음식까지 나누던 그 풍경. 때로는 너무 친절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 정겨움이 그리웠다.


테이블 정리 후 다음 목적지를 향해 자리를 떠나는데, 그녀들 테이블 위에는 음료수와 간식이 가득했다. “천막 설치하는데 수고했다고 음료수 하나라도 건네야 하지 않을까?”라고 중얼거리며 걷고 있는데, 아내는 그 말을 듣더니 “괜한 생각”이라면서 요즘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 있냐고 핀잔을 주었다.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한국적 정서가 불현듯 떠올라한 말이었는데, 그 마음마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조금은 서글펐다.


이번 하루의 여름휴가는 특별한 관광지도, 긴 일정도 없었다. 하지만 호수 곁에서 나눈 라면 한 그릇과 천막 설치를 함께하며 느낀 작은 나눔은 오히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해외에 살면서 다시금 느낀 것은, 한국의 정서와 나눔의 문화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작은 차이가, 나에게는 올여름휴가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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