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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망 하나로 떠난 캐나다 바닷가 게낚시 소풍

캐나다 바닷가에서 배운 작은 질서와 생명의 무게

by 김종섭

같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처형 부부가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우리 집에 들러 쉬어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같은 나라에 살고는 있지만, 비행기로 두세 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 탓에 자주 보기란 쉽지 않다. 며칠째 이어지는 화창한 날씨 속에, 부부는 긴 여정의 짐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랜만에 함께 바다로 나가 게잡이를 하기로 약속했다


전날 우리는 게망 낚시에 필요한 도구를 점검하고, 야외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한 버너와 코펠도 미리 챙겨두었다.

게잡이에 앞서 낚시 라이선스도 온라인으로 신청했다. 캐나다에서는 낚시를 하려면 반드시 면허가 필요한데, 바다낚시(Saltwater)와 민물낚시(Freshwater)로 나뉜다. 흥미롭게도, 게잡이는 의외로 민물낚시 범주에 속한다. 이번에는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연간 민물낚시용 라이선스를 발급받았고, 비용은 약 40달러 정도 들었다.


다음 날, 게잡이 명소로 잘 알려진 벨카라 리저널 파크의 전용 부두에 도착했다. 이곳은 던지니스 크랩과 레드 록 크랩을 잡기에 적합한 장소로 유명하다. 주말이나 연휴, 날씨 좋은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우리는 일부러 한산한 평일, 금요일을 선택했다.


벨카라는 낯선 곳이 아니다. 예전에는 자주 찾던 곳이지만, 이번 방문은 2년 만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여전히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달라진 것은 계절의 감각뿐이었다.


이 공원에서는 게잡이 뿐 아니라,피크닉, 바비큐, 하이킹, 카약, 카누, 스쿠버다이빙, 조류 관찰 등 다양한 야외 활동도 즐길 수 있다. 특히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는 하루를 넉넉히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지역 학생들의 야외학습, 공원에서 즐기는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

공원 안에서는 근처 학교에서 야외 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체육복 차림은 아니었지만, 모두 편안한 복장으로 잔디밭을 누비며 자연 속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는 정식 체육행사라기보다는, 자유롭게 뛰놀며 자연을 체험하는 야외 학습의 분위기였다.


벨카라 공원은 평일임에도 뜻하지 않게 학생들이 현장 학습을 나와 마치 작은 축제처럼 활기로 가득했다. 피크닉 나온 방문객들도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게잡이용 닭고기 미끼를 게망에 고정 중

다행히 공원에는 아직 빈 테이블이 남아 있어,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자리를 정리한 뒤 곧바로 가져온 게잡이망을 꺼냈다. 첫 작업은 미끼 고정. 미리 준비해 온 닭다리를 게망 안에 단단히 묶는 것부터 시작했다. 기름기 많은 닭고기는 바닷속 게들의 후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유인재다. 실제로 게낚시 초보자들도 흔히 사용하는 효과 좋은 미끼다.

우리는 미리 준비한 케이블 타이로 닭다리를 게망 안에 고정시켰다. 단단히 고정된 것을 확인한 뒤, 게망을 들고 부두 끝 부분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부두에 마련된 전용 데크에서 게잡이 중

게잡이용 데크가 마련된 부두에는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쪽 구석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곳은 예전에도 몇 차례 찾았던 익숙한 장소다. 올 때마다 한두 마리쯤은 잡아가곤 했지만, 대부분은 단단한 껍질을 가진 레드 록 크랩(Red Rock Crab)이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던지니스 크랩(Dungeness Crab)도 이 부두에서 간혹 잡히지만, 큰 놈을 잡으려면 사실 보트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야 한다. 부두 근처에서는 크기가 작거나 암컷이 잡히는 경우가 많아, 규정된 크기나 조건에 맞는 던지니스 크랩을 잡는 일은 거의 ‘행운’에 가깝다. 그만큼 한 마리만 건져도 “오늘 운 좋은 날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동안 이곳을 수십 번은 찾았지만, 내 기억 속에 던지니스 크랩을 한두 마리 이상 제대로 잡아본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던지니스 크랩 한 마리를 건져 올리는 순간은 언제나 특별한 ‘대박’의 순간으로 남는다.

게망에서 건져 올린 작은 크랩, 규정 크기 미달로 방생

게망을 던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게망을 건져 올렸다. 운 좋게도 몇 마리의 던지니스 크랩(Dungeness Crab)이 게망안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규정에 미치지 못하는 크기였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녀석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의 게잡이에는 매우 엄격한 규정이 적용된다. 크기와 성별에 관한 조건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던지니스 크랩은 최소 165mm, 레드 록 크랩(Red Rock Crab)은 최소 115mm 이상의 갑각 길이를 가져야 채취가 가능하다. 이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게잡이꾼들은 반드시 캘리퍼(caliper)라는 측정 도구를 휴대해야 한다.

또한, 암컷은 무조건 방류해야 한다. 캐나다에서는 번식 보호 차원에서 수컷만 채취를 허용하고 있다. 암컷은 배 부분이 넓고 둥근 벌집 형태인 반면, 수컷은 좁고 뾰족한 등대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장에서 정확히 식별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규정을 어기고 크기가 미달되거나 암컷을 가져갈 경우, 공원 관리요원에게 적발되면 상당한 금액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그만큼 스스로 규정을 숙지하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사람들은 요원의 눈을 피해 규정에 어긋나는 크랩을 몰래 가져가기도 한다.

규정 위반 금지! 크기 미달·암컷은 방생

게망에서 이번엔 제법 커 보이는 던지니스게 한 마리가 올라왔다. 얼핏 보기엔 규정에 근접한 듯해 기대를 안고 게망에 부착된 크기 측정 도구로 재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165mm에 미치지 못했다. 게를 조심스레 뒤집어 확인해 보니, 이번에는 더더욱 놓아줄 수밖에 없는 암컷이었다.

던지니스게의 규정 크기인 165mm는 실제로 생각보다 큰 편이다. 눈대중으로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판단하기엔 어려운 크기다. 그렇다 보니 초보자들은 허용 크기를 넘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막상 캘리퍼로 재보면 간발의 차이로 미달인 경우가 많다.

바다 위로 천천히 다시 풀어주는 순간, 게는 조용히 물속으로 사라졌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규정을 지키며 기다리는 것 또한 이곳 게잡이의 또 다른 매력임을 새삼 느꼈다.

방글라데시 가족, 부두에서 크랩과 기념 촬영

게잡이를 나오면 유독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건, 한국인 주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나와 게를 잡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게가 물 위로 올라올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고, 어머니들은 안전하게 다루는 법을 알려주며 함께 웃었다. 단순한 낚시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는 자연 체험 학습 같아 보기 좋았다.

한쪽 부두에서는 여행객처럼 보이는 방글라데시 가족이 온 식구가 함께 나와 게잡이 광경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가 잡은 게를 바다에 돌려보내기 직전, 그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혹시 게를 잠깐 들어서 사진 찍어도 될까요?”
흔쾌히 허락하자, 가족들은 돌아가며 차례로 게를 손에 들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관광객이 아니라 방글라데시에서 이민 와 밴쿠버에 정착한 지 3년째 되는 가족이었다. 주말을 맞아 공원에 바람 쐬러 나왔다고 했다. 그들의 밝은 표정과 예의 바른 태도에 기분이 좋아졌다.

문득 예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공장에도 방글라데시 출신 근로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이들에게는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언어는 달라도, 이방인으로서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의 어떤 정서적 공감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잡은 레드 룩 크랩을 들고 인증샷

드디어 동서가 게망에서 규격에 맞는 레드 록 크랩(Red Rock Crab)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던지니스 크랩은 아니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오늘의 목표였던 ‘라면에 넣어 끓여 먹을 게 한 마리’는 일단 달성한 셈이다.

잠시 후, 나도 한 마리의 레드 록 크랩을 걷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오늘의 수확은 총 두 마리. 만족할 만큼의 손맛을 보고 우리는 게잡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캐나다에서는 한 사람당 최대 두 개의 게 트랩(crab trap)을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나 혼자만 낚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이상 게를 잡는 것은 규정 위반이 된다.

게망을 정리하고 피크닉 테이블로 향했다. 대부분의 게는 규격 미달로 바다로 돌려보냈지만, ‘낚시는 손맛’이라는 말처럼 게를 건져 올리는 그 순간의 짜릿함은 결과와 상관없이 큰 즐거움을 주었다. 특히 게망을 끌어올릴 때 여러 마리의 게가 함께 올라오는 장면은 언제 봐도 짜릿하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장면도 있었다. 게망에 엉켜 있던 게를 꺼내는 과정에서 한 마리의 크랩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방류되고 말았다. 규정에 따라 크기와 암컷 여부를 확인하고 바다로 돌려보냈지만, 다리가 빠진 채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웠다. 작고 말 없는 생명이지만, 더 조심스럽게 다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잡이 후 꿀맛 같은 점심시간

마트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사 오고, 어제 먹다 남은 피자와 수박도 잘게 잘라 플라스틱 통에 담아왔다. 게잡이 후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한 작은 피크닉이었다. 해변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고 하나둘 음식을 꺼내니, 바닷가에서 즐기는 소풍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밥은 모둠 세트라 여러 가지 맛을 골고루 맛볼 수 있었고, 떡볶이는 매콤하면서도 달큼한 양념이 입맛을 제대로 자극했다. 어제 남긴 피자도 전자레인지에 데워 온 덕분에 의외로 괜찮았고, 수박은 아이스팩에 넣어왔더니 더운 날씨 속에서 최고의 디저트가 되어 주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한 끼는, 특별할 것 없는 메뉴였음에도 묘하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바다를 바라보며 나누는 음식 속에는 소소한 여유와 정겨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음식을 나누는 그 시간 동안, 오늘 하루가 조용히 마음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게를 잡고, 햇살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함께 나눈 음식이 만들어낸 이 하루는 아마도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잡은 게로 끓여낸 바닷내음 가득한 라면

레드 록 크랩 한 마리를 깨끗이 씻어 등분한 뒤, 라면에 넣고 끓였다. 끓이기 전, 살아서 꿈틀거리던 게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니 조금 전, 다리 하나가 잘린 채 바다로 돌아간 또 다른 게가 떠올랐다.

야외에서는 어떤 음식이든 꿀맛이 되기 마련이라 기대도 컸다. 하지만 생각보다 게 특유의 깊은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껍질은 얇았고, 살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 순간, 묵직하고 살이 가득한 던지니스 크랩이 문득 그리워졌다. 어쩌면, 음식보다 기대와 욕심이 먼저 입맛을 눌러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한 마리는 비닐봉지에 싸서 집으로 가져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물을 마시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봉지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아직 살아 있는 게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내는 "더는 고통을 주지 말자"며 조용히 냉동실에 넣자고 했다.

그 순간, 게를 단지 '맛있는 것'으로만 여겨왔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생명임에도 너무 쉽게, 너무 무심히 다뤘다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오늘따라,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아내는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여린 마음으로 다음에도 게잡이 할 수 있겠어?”

게맛은 조금 아쉬웠지만, 오늘 하루는 오래간만에 자연과 부딪히고, 가족과 함께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돌아보게 한 뜻깊은 날이었다.
어쩌면 짧은 하루였지만, 마음속에는 오래 남을 이야기 하나가 조용히 자리 잡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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