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횟집과는 달랐던 지중해의 바다 맛 풍경
이번 5월 터키 인근에 있는 지중해 여행 중, 한 해산물 레스토랑 앞에서 나는 익숙한 풍경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얼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해산물 진열대는 한국의 횟집을 떠올리게 했다. 문득 반가운 마음에 “이곳에서도 신선한 회를 맛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일었다.
진열대 한가운데는 큼직한 문어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왼쪽에는 크기와 종류가 다양한 생선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주변엔 조개류와 새우도 함께 진열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매우 신선한 인상이었다. 마치 한국의 활어 진열대처럼 보였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회를 떠올렸다.
물론 수족관이 없다는 점은 조금 이상하긴 했다. 그래도 이 얼음 진열은 갓 잡은 생선을 신선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주문을 하자마자 곧 실망감이 찾아왔다. 터키에서는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는 문화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진열된 해산물은 횟감용이 아니라 조리를 위한 것이었다. 얼음 위의 진열은 손님에게 신선한 식재료임을 보여주기 위한 쇼케이스였던 것이다.
ㅣ한국의 활어회 vs. 터키의 조리 해산물
한국의 횟집이라면 수족관 속에서 생선이 유유히 헤엄치고, 손님이 직접 고른 생선을 즉석에서 잡아 회로 떠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해변이나 항구 근처에서는 이런 횟집들이 줄지어 있고, 소주 한잔 기울이며 활어회를 즐기는 모습은 익숙한 일상이다.
반면 터키의 해산물 문화는 전혀 다르다. 여기서는 진열된 해산물을 대부분 익혀 먹는다.
가장 일반적인 조리 방식은 ‘이즈가라(Izgara)’, 즉 숯불구이다. 도미, 농어, 고등어 등을 소금, 후추, 올리브유로 간단히 양념해 그릴에 구워낸다. 작은 생선이나 홍합은 튀김으로 제공되며, 문어는 삶거나 구운 뒤 샐러드로 만든다. 날 생선을 횟감으로 썰어 내는 방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터키의 해산물 진열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싱싱한 활어회’ 횟감용이 아니라, ‘맛있게 익혀 먹을 수 있는 최상의 재료’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 공간인 셈이다.
ㅣ한국의 기억, 이탈리아와 터키의 실망
문득 오래전, 가족들과 동해로 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동해안에서 조개구이를 맛있게 먹었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조개류는 주로 서해에서 잡혔기 때문에 조개류는 서해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회는 달랐다. 서해보다는 동해에서 회를 즐겨야 제맛이라는 것이다. 결국 어장과 맞지 않는 메뉴를 엉뚱한 현지에서 찾다 보니 아쉽고도 미련한 무지의 선택이 되었다.
이번 터키 여행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 먹던 회를 이국의 해변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착각이었고, 문화에 대한 오해였다. 터키 해산물 진열대 앞에서 느낀 실망은 나의 기대가 만들어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전 이탈리아 제노바 항구를 여행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바다를 낀 도시이니 당연히 활어센터 같은 곳이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정작 생선 진열대조차 찾기 어려웠고, 날생선은커녕 해산물 자체도 보지 못하고 다른 행선지로 떠나던 생각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ㅣ회는 정말 ‘싱싱함’의 대명사일까?
터키의 해산물 진열대는 시각적인 신선함만을 강조하는데 치중한 기능이었다. 물론, 손님이 원하는 생선을 고를 수 있게 하는 상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본 느낌은 활어횟감을 떠올리게 했지만, 터키에서는 단지 ‘조리’를 위한 신선한 재료 선택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회=싱싱함’이라는 공식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사실 생선은 일정 시간 숙성했을 때 감칠맛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예전에 캐나다에서는 위생상의 이유로, 생선을 일정 온도 이하로 냉동했다가 해동해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이 숙성 생선을 맛보고 “싱싱하다!”라고 감탄했지만, 정작 생선은 이미 냉동 과정을 거친 회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싱싱함이란, 심리적인 요인이었다. 먹는 관광객은 갓 잡은 싱싱한 회로 아직도 그때 그 맛을 추억으로 남겨 놓았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 관경을 보고 웃었야 할 기억이 있었다.
회는 무조건 ‘날로 먹는 게 최고’라는 고정관념은, 어쩌면 시각적인 기대감이 만들어낸 착각일 수도 있다. 진짜 맛은 익히든, 익히지 않았든,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조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ㅣ회는 회답게, 구이는 구이답게…를 넘어서
터키에서의 회 없는 식사는 처음엔 실망했다. 하지만 그들만의 음식 문화를 인정해 주어야 했다. 그릴에 구운 도미 한 조각, 올리브유에 버무린 문어 샐러드, 바삭하게 튀긴 작은 생선들은 한국의 회와는 또 다른 풍미를 선사했다.
‘회는 회답게, 구이는 구이답게’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이번 여행은 지역마다 다른 해산물 문화와 그 속에 담긴 철학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꼭 날것이 아니어도, 바다의 맛은 다양한 방식으로 깊고 풍부하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