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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침, 꿀처럼 달콤한 충격

튀르키예 호텔 조식에서 만난 ‘진짜 벌꿀’ 이야기

by 김종섭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호텔 조식 풍경은, 예상치 못한 '벌집 꿀’이었다. 각 호텔 식당 한편에는 커다란 금속 스탠드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엔 직사각형 틀 속에 ‘진짜 벌집’이 고정돼 있었다. 육각형 셀(Cell) 구조 안에 황금빛 꿀이 가득 들어 있었고, 그 모습은 전시물처럼 근사하게 빛났다.

자연산 벌꿀집

스탠드 아래엔 나무 받침대와 그 위엔 흰색 접시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꿀이 흘러내리더라도 조식 공간이 지저분해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한 흔적이 엿보였다. 벌꿀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누군가는 작은 칼로 벌집을 잘라 접시에 덜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스푼으로 접시에 살살 떠 옮겼다. 벌집 속에서 천천히 스며 나오는 꿀은 그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금방 자연에서 채취해 온 선물과도 같아 보였다.

첫날에는 커피 옆에 놓인 꿀을 보고 ‘커피에 타먹는 전용 설탕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다음 호텔에서도, 또 그다음 호텔에서도, 벌집 꿀은 빠지지 않고 조식 공간의 중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저녁 뷔페식당에도 이 꿀은 여전히 등장해 있었다.. 천연 벌집 꿀은 식당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마치 물처럼 기본이 되는 존재 같았다.

터키에선 이렇게 가공되지 않은 벌집 꿀을 조식에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라고 했다. 우리에겐 낯선, 아니 낯설다기보단 신비롭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몇몇 국가를 여행하며 호텔 조식에서 마주했던 꿀은 대개 소포장된 설탕 대용품이거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시럽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익숙한 풍경에 길들여진 내게 이곳의 꿀은 조식의 중심에 선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그저 “빵에 발라 먹는 달콤한 소스”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여러 식당을 다녀보니, 벌꿀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다. 터키 음식에서 벌꿀은 고추장이나 김치처럼 빠질 수 없는 기본양념이자 주식의 일부라는 걸 깨닫게 됐다.

특히 신선한 빵 위에 벌집 꿀을 조심스럽게 올려 먹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과 함께 ‘쫀득’하게 씹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벌집이었다. 마치 부드러운 고무를 씹는 듯한 식감을 감수해야 비로소 천연 벌꿀의 진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겉보기엔 단순한 조합이지만, 벌꿀의 향과 질감이 빵과 어우러져 생각보다 훨씬 깊고 진한 맛을 만들어냈다.

아마도 눈앞에서 본 ‘자연 그대로의 꿀’이라는 감정적 경험이 미각에까지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분에 따라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니까.‘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 딱 들어맞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빵과 치즈만으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지?”
한국에선 빵이나 면은 여전히 ‘끼니를 때우는 간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라면이나 김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진짜 밥은 먹어야지” 하며 밥상이 차려지곤 했다.‘밥심으로 산다’는 말처럼, 밥이 아니면 식사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깊게 배어 있었다.

하지만 터키에서는 빵, 치즈, 그리고 꿀만으로도 완전한 아침 식사가 성립됐다. 이 문화적 차이가 내게는 작은 충격이자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음식문화도 점점 달라지고 있다. 밥이 아니어도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고, 세끼를 기본으로 하던 시대에서 두 끼 생활이나 브런치 중심의 라이프스타일도 익숙해지고 있다.

음식이란 결국 문화이고, 그 문화는 세대와 지역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느꼈다.

터키의 빵,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자연산 벌집 꿀. 가공되지 않은 이 두 재료가 만들어낸 아침 식사는 내게 작은 문화적 충격이었고, 동시에 꿀처럼 진하게 남은 여행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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