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땀방울이 담긴 첫 급여 체크, 캐나다식 '금융치료'를 경험하다
1년 반 전, 당당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내 생애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경제활동은 이제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후의 시간은 은퇴자답게 무료하지 않도록 소일거리를 찾으며 보내는 것에 집중해 왔다.
그러던 몇 주 전,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새로 창업한 회사의 일을 좀 도와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다. 사실 거창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닌 단순 노동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막상 일 자체를 내려놓았는데 일을 다시 시작하려니 왠지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생겨났다.
'이 나이에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첫 2주간은 주 5일을 꽉 채워 일했다. 원래는 주 3일 정도를 희망했지만, 신생 회사라 인력 조정이 필요하다는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당분간은 4~5일을 일하면서 곧 주 3일 정도로 조율해 주기로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2주간 일을 한 첫 급여가 나왔다. 발행일은 15일이었지만, 세무 관계와 휴무일이 겹치는 바람에 실제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지난 20일이었다. 며칠간의 기다림 끝에 받은 이 종이 한 장이 주는 무게감이 남다르다. 한국에서는 정해진 날짜에 통장으로 숫자가 찍히는 '자동 입금'이 당연했지만, 이곳 캐나다는 여전히 '체크(Paycheck)'라 불리는 수표를 직접 발행해 주는 방식이 흔하다.
급여 지급 방식이 참 흥미롭다. 마치 예전 한국에서 쓰던 가계수표처럼, 회사가 발행한 체크를 들고 은행에 가거나 스마트폰 앱으로 스캔하면 바로 현금화되어 내 계좌로 들어온다. 2주간의 노동이 디지털 숫자가 아닌, 내 이름이 정갈하게 적힌 실물 종이로 전달되니 '일한 대가'를 받는다는 실감이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한인 사회에서 2주마다 들어오는 급여를 두고 '금융치료'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고된 노동의 피로를 씻어주는 강력한 활력소인 셈이다.
2주간의 땀방울이 담긴 금액은 2,500불이 넘었지만, 세금으로 510불 정도가 공제되었다. 수령액의 약 20%가 빠져나간 셈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세전 금액이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슬쩍 고개를 든다. 돈이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흔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하지만 돈보다 더 괴롭힌 건 '자격지심'이었다. 은퇴 전과 달리 아주 작은 실수에도 나 자신을 강하게 질책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이 때문에 실수를 하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수시로 나를 흔들었다. 주변에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데도, 혹여나 회사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했다.
이런 고민을 들은 아내는 "그건 노염(老炎)이야"라고 조언했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에게 갖는 엄격함이 자칫 정체성 혼란을 줄 수 있으니,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사실 몇 년 전 면접에서 나이 때문에 거절당했던 아픈 기억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삶의 질이 떨어진다면 언제든 그만두라고 말해준다. 은퇴 후 얻은 일자리는 어디까지나 '덤'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체크를 스캔해 입금을 마쳤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줄 알았던 통장 잔고가 올라가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를 든든한 힘이 생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은퇴 후 경제활동은 돈을 버는 재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은퇴 전에는 생존을 위해 매진했다면, 지금은 '일에 대한 성취감'과 '가치 인정'이 우선이다.
이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다만 앞으로는 주 2~3일 정도로 업무 시간을 조율하며, 남은 시간은 건강 관리와 새로운 취미를 찾는 시간으로 채워갈 예정이다. 은퇴 후 다시 시작된 이 여정이, 적정한 일과 여유 있는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