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35주년, 파고 다듬어 아내에게 건넨 것

숲에서 주워온 고사목에 새긴 '짝꿍' 판화 선물과 소박한 삼겹살 파티

by 김종섭

결혼기념일이다. 엊그제 30주년을 맞이한 것 같은데, 어느덧 또다시 35년이라는 세월의 중심에 서 있다.

오늘 우리 부부는 35년 되는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보통 5년, 10년 단위로 기념일에 특별한 의미를 보태곤 한다. 하지만 30주년 때도 우리는 거창한 행사나 선물 대신 "앞으로도 잘 살아봅시다"라는 짧은 격려로 그날을 갈음하며 지나왔다.

오늘도 예외 없이 기념일 계획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아내는 몇 주 전부터 미리 약속되어 있는 일이 있어 오전에 외출했다. 혼자 남은 집에서 화원에 가 꽃이라도 사서 아내에게 선물할까 고민하다 문득 베란다에 보관되어 있던 나무토막들이 생각났다.

몇 주 전 산책길이었다. 숲 한구석에 고사한 나무가 공원 관리자의 손에 잘게 썰려 나뒹굴고 있었다. 나무 중에는 언젠가 토막 난 나무 조각을 이용하여 무엇이든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요량으로 그중 괜찮은 것 몇 개를 들고 와 베란다에 두었던 것이다. 그 나무 위에 그림이나 명언을 새겨 아내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숲에서 가져온 나무토막으로 만든 '짝꿍' 판화와 기념 케이크. 서툰 솜씨지만 정성을 담아 깎았다.

사실 시간 날 때 무료함을 달래려 작업을 해보려고 보관 중인 나무토막이었지만, 나무라는 소재에 아내가 오기 전에 결혼기념일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다. 서둘러 조각칼을 꺼냈다. 무엇을 새길지 고민하며 정보를 찾다 보니, 남녀의 실루엣으로 글자를 완성한 '짝꿍'이라는 형태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판에 밑그림을 그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지만, 상형문자 같은 오늘의 미션은 나름대로 도전해 볼 만했다. 밑그림을 그린 뒤 조각칼로 양각 형태를 잡아나갔다. 아내가 돌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시간. 완벽하게 완성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형태 주위만 도드라지게 깎아내기로 했다. 완성된 모습은 조금 투박했지만, 비록 미완성일지라도 멀리서 바라본 첫 작품의 느낌은 초보자 치고는 꽤 근사했다.

작품이 거의 완성될 즈음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시장을 봐서 돌아왔다. 작고 귀여운 케이크와 삼겹살을 사 들고 온 아내. 우리의 35주년은 그렇게 평범한 삼겹살 파티로 준비되었다. 나는 식탁 위에 꽃 대신 방금 만든 나무 판화를 슬며시 올려놓았다. 아내는 "삼겹살에는 소주가 제격"이라며 한국 소주 한 병을 꺼내와 분위기를 돋웠다.

전날 큰아들과 통화하며 내일 엄마 아빠 기념일 소식을 전했더니 "두 분이 알아서 잘 보내시라"며 웃어넘겼다. 오늘 아침엔 작은며느리가 축하 카톡을 보내왔다. 오후에는 작은아들이 엄마에게 결혼기념일 축하 전화를 걸어왔다. 큰아들 말처럼 결혼기념일은 부부 둘만의 날이 맞겠지만, 부모의 기념일을 바라보는 자식들의 각기 다른 반응을 경험하는 것도 새삼 흥미로웠다.


식사 도중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여보, 우리 35주년 말고도 앞으로 40년은 더 남았어요." 아내의 계산에 따르면 올해 예순 인 아내가 100세까지 산다면 결혼 생활이 40년이나 더 남았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백 살이 넘는데?"라고 되물으니, 아내는 "103세까지만 살면 되지요"라며 웃으면서 화답했다.

한참을 웃어넘겼지만, 60대인 지금 우리에게 결혼생활이 40년이나 더 남았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그동안 너무 늙어가는 것만 생각하며 살았구나' 싶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가졌던 생각들이 아내의 말 한마디에 색다른 희망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여전히 살날이 많이 남은, 갈 길이 먼 '짝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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