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교회 건물 하나를 한국·중국·아랍 등 네 민족 교회가 공유하는 풍경
집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교회가 하나 있다. 이 건물은 여느 교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는 입구에 세워진 각양각색의 간판들 때문이다.
가장 높이 솟은 메인 간판에는 세인트 루크 루터교회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 아래로 세 개의 작은 간판이 조르르 늘어서 있다. 파란색 바탕에 한국어로 쓰인 ‘목양교회’, 그 옆으로는 붉은색 배경의 아랍어 간판, 그리고 초록색 바탕에 ‘구주당(救主堂)’이라는 중국어 교회 간판이 나란히 서 있다. 서로 다른 언어가 한 곳에 모여 있는 모습은 이 건물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오래전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이 떠올랐다. 루터교회라는 큰 지붕 아래 한국, 중국, 아랍의 교회가 각자의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밴쿠버 판 ‘한 지붕 네 가족’을 보는 듯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건물은 서로 다른 민족 공동체가 각자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의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는 구조로 보였다. 예배 시간도 서로 겹치지 않게 나뉘어 운영되는 것으로 보였다. 단순히 공간을 빌려 쓰는 셋방살이의 개념을 넘어, 서로 다른 공동체가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하는 모습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하지만 교회 입구는 적막하리만큼 고요하다. 지난 성탄절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큰 명절임에도 특별한 장식이나 화려한 안내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여러 교회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에 특정 교회의 색을 드러내기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캐나다 이주 초기, 나는 이곳 교회의 활용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교회는 단순히 주일 예배만을 위한 닫힌 공간이 아니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숨 쉬는 생활공간이자, 공동체가 이어지는 장소라는 인식이 점차 생겨났다. 그리고 오늘 교회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민족이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는 모습까지 보게 된 것이다.
높은 물가와 건물 유지비 같은 현실적인 이유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함께 사용하는 방식’ 그 자체였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한 공간 안에서 충돌하기보다, 조용히 자리를 나누며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나라다. 거리를 걷다 보면 여러 피부색과 의상을 지닌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그저 낯선 풍경으로만 보였던 장면들이, 이제는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질서가 낯설지 않게 느껴가기 시작했다.
부활절 연휴의 고요한 아침, 나란히 서 있는 세 가지 색깔의 간판을 다시 바라본다. 부족하기에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고, 그 틈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모습이 이 고요한 부활절 오전, 나란히 선 세 간판에서 캐나다식 공존의 의미를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