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어린 김지연. (이준기 짤 패러디) 지금은 10대와 20대 시절의 기억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국민학교(일제강점기 아님) 등교하기 싫어서 학교 가는 척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책을 읽었던 나. '지연이가 일어나서 이야기해 볼래?'라고 선생님이 부르셨을 때 내가 일어나는 순간 모두가 날 쳐다볼까 봐 무서워서 일어나지 못했던 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버스에서 큰 소리로 절친한 친구에게 아는 척을 하는 게 떨려서 눈이 마주쳤는데도 소리 없이 인사도 못해서 다음날 절교 당했던 나. 중학교 때는 방에 틀어박혀서 하루에 12시간씩 책을 읽고, 이영도의 판타지를 좋아하고 김용의 무협소설을 좋아하던 나. 글쓰기에 그럭저럭 재능이 있어서 늘 발표의 대상이 되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일부러 글을 마무리하지 않고 제출했던 나. 대학교 교양 수업 시간에 쓴 시를 발표시킨다기에 피 같은 등록금도 무시하고 수업을 결석했던 나. 돈을 벌어야 했는데 우울하고 피곤한 얼굴이라고 매번 면접에 떨어지던 나. 그래서 억지로 밝은척하는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건 어쩌면 타고난 성향이었을지도 모르고, 좋지 않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원래 모습을 상실한 내 모습이었을지도 몰라. 내성적인 것과 불행은 상관관계가 없으니 후자일지도? 어쨌든 난 20대가 참 어두웠던 것 같아. '나'를 몰라서,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그래서 최근 몇 년간은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열심히 탐구했지. (기회가 되면 하나하나 썰 풀어줌. 샘 별거 다해봤거든!)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난 '바뀌고 싶었고' 그로 인해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는 달라졌다는 사실이지.
용기 내서 쓴 글을 발표하고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도 아이들 앞에 나가서 수학 문제 풀이를 하고 박수를 받았을 때, 청소년 김지연의 만 19년은 99%의 소심함과 1%의 대범함으로 이루어졌었지만, 그 1%의 용기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아. 전공 수업 발표 후 진정이 안되어 갈 곳을 모르겠어서 화장실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밖에서 '김지연 진짜 말 잘하지 않았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XX선생님 앞에서 시강을 하기 위해 교단에 섰지만 일주일 동안 달달 외운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리가 하얘졌다가, 무슨 용기인지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크게 말했던 때, 20대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소극적인 사람이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걸 무서워하거나 그로 인해 힘들지 않으니까. '지금의 나'는 드디어 내가 찾은 원래 내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고, 혹은 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지금보다 너 나아지고 싶어. 그것만은 확실하단다.
그래서 샘은 너희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결코 '그게 뭐라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 물론 종종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불편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거짓을 말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맑게 웃어주는 게 어른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다만 네가 아무리 바쁜 환경 속에서라도 '나'를 위해 즐거운 것을 꼭 했으면 한단다. 단순한 '소비'가 아닌 '체험'을 하면서 말이야. 그 '체험'이 너를 '너'로 만들어줄 것이고, '너'를 변화시킬 것이고, '너'를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