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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맑음 Jul 28. 2023

나와 다른 너라서 좋다.

'이성이'와 '감정이'의 결혼, 그리고 낳은 '감정이' 둘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결혼을 하였다. 누구나 그렇듯 서로를 절절히 원해서 한 결혼이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결실이라 사랑의 마침표가 될 줄 알았건만, 결혼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삶의 모든 것을 맞춰가는 시작, 그것이 곧 결혼이더라. 연애할 때는 너무나 좋았더랬다. 종교적인 문제 말고는 특별히 싸울 것이 없었는데 (그래서 남편은 연애가 더 힘들었다 함), 아이를 낳으니 확실히 부딪치는 면이 많아졌다. 

살아보니 남편은 이성적 판단을 앞세우는 '이성이', 아내인 나는 감성적 판단을 앞세우는 '감정이'다.


나와 남편이 어떻게 다른지 MBTI로 파악해 보았다. 난 ESFJ, 남편은 ISFJ로 앞글자만 다른데 왜 우린 많이 다른 느낌인 걸까?



  ISFJ-T의 남편


현실적이고 정확하고 체계적이다. (그래서 숨이 막힐 때가 있음/나보다 더 완벽주의)

보수적이고 약간 꼰대스럽다. 모범생 스타일 (아빠 같을 때 있음)

감정표현 약하다. (내가 제일 요구하는 것)

성실함 / 책임감 1000% (이건 나와 같음)

신중함 / 충동성 0% (고난도로 신중함)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강해 의심은 많으나,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여김(난 모든 인연이 소중함)

집중력이 강하고 상당히 탐구적이라 뭐든 깊게 파고 듦(제발 나를 좀 탐구해 줘)

위기가 닥쳐도 대체로 침착한 편(나는 오두방정)

경청을 잘하고 말보다는 행동(나는 말만 청산유수)

예민둥이/ 걱정인형 /안전불감증(나도 점점 예민해짐)



ESFJ의 아내 - (ex.겨울왕국의 안나)


감정이 풍부함(그래서 감정 소모 많음)

결정장애(남편이 결정해줘야 함)

친화력, 사회성 좋음(정작 나 자신은 못 챙김)

주변 눈치 많이 봄(변동 없는 남편눈치도 살핌)

혼자 있는 거 싫어함(나가는 거 좋아함)

타인의 시선에 민감함(오늘 뭐 입지? 엄청 오래 걸림)

완벽주의(나 자신에게 스트레스 엄청 줌)

거절 잘 못함(무턱대고 떠안는 일 많음)



나도 나름 신중한 편이라 생각했지만 남편은 청소기 구매하는데 한 달, 새 차를 구매하기까지는 1년이나 걸린다. 대신 후회가 없고 만족도가 높다. 난 빠른 구매, 급 후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일정 뿐 아니라 여행기간 동안 아침/점심/저녁 어느 메뉴를, 어느 식당 가서 먹을 것인지까지 세부적으로 정한다. 그래서 난 여행일정 세우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여행짐만 싼다.


또 남편은 "초동조치를 확실히 해야 해!"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때 호들갑을 떨며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하려는 마인드와 빠른 판단력이 있다. 하지만 난 '이게 그렇게 커질 일인가?' 생각하며 따라가느라 가끔 벅차다. 가족이 다쳤을 경우에도 '괜찮아?', '많이 아파?'라는 말보다 연고와 밴드를 가져오는 편이다. 길을 걸어갈 때도 2M 이내에 아이들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느끼며, 내 가족에 대한 보호본능이 너무 크다. 나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지만 나보다 더 한 남자를 만나니 인생이 좀 피곤하다.


남편은 이성적 판단 중요 / 난 느낌적 판단 중요

남편은 경험으로 기억 / 난 감정으로 기억


나에겐 없는 다른 모습에 이끌려하는 게 결혼이다. 그러니 로또처럼 처음부터 맞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것은, 가치관이 같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관,
서로를 바라보는 가치관, 
즉 우리는 결이 같다. 


모든 것이 달라도 가치관이 같으면, 바라보는 방향이 같으면 문제가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이성이와 감정이로 연애 4년 + 결혼 12년 = 총 16년을 함께 있다 보니 왜 서로를 선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도 좋다.

 나와 같지 않아도 좋다.

 그래서 좋다.

 나와 다른 너라서 좋다. 

                                  

 by. 써니






이런 우리에게 두 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다. 한 명은 남편을 닮아 예민한 예민둥이 아들, 한 명은 나를 닮아 사랑스러운 사랑둥이 딸. (좋은 건 다 나 닮았다고 우기는 게 국룰이다)


아침부터 예민둥이 아들의 잔소리가 울려 퍼진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워 오빠 방 침대 옆에서 처량하게 이불 깔고 잠을 자는 동생에게 "야, 너 자고 일어났으면 이불 정리해! 네가 계속 내 방에서 자니깐 내 공간이 점점 줄어들잖아! 아, 정말 내 방인데 내 방 같지가 않아" 


사춘기에 접어들어 그런지 아들은 요즘 자기 공간에 대한 주장이 참 강하다. 올초까지도 무섭다고 같이 잤던 쫄보 아들에게 "아침부터 동생한테 예쁜 말 안 할래!" 라고 말한 뒤, 딸에게는 "치사해서 엄마 같으면 내 방에서 자겠다. 그러니깐 너도 오늘부터 네 방에서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딸은 "오빠는 5학년인데도 무섭다고 얼마 전까지 엄마랑 잤잖아!, 난 이제 1학년인데 왜 혼자 자라고 해!" 라고 말한다. 


이 와중에 아들은 또 "야 오빠는 같이 잤어도 5살부터는 엄마 옆에서 못 잤어!, 네가 태어나서 그때부턴 네가 엄마 옆에서 잤잖아"라고 맞받아친다. 엄마 옆자리를 동생에게 뺏겼다고, 그래서 한 공간에서라도 엄마랑 자고 싶었다는 아들의 심정이 드러나는 말이라 조금 미안하면서도 "그럼 내가 태어나서 잘못이라는 거야! "라며 엉엉 우는 딸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우는 딸을 달래 가며 아침을 먹이고 부랴부랴 두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냈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휴우 ~


올초부터 각자 방을 꾸며주며 잠자리 독립을 시켰건만 아들은 많이 커서 그런지 바로 독립이 됐는데 딸은 아직까지도 주6일은 오빠와, 하루는 엄마와 잔다. 엄마로서 사는 삶이란 참 뭐랄까, 잠도 편하게 못 자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 감정도 힘들 때가 많은데 아들과 딸의 감정까지 토닥여주며 살아야하는 그런 삶인 것 같다.


아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풍부한 편이다. 친정엄마가 아들을 돌봐주던 때에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이 찬양을 틀어놨는데 3살 아들은 그 찬양을 듣고 펑펑 울었다. 3살짜리가 뭘 안다고 울었는지, 애기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한 것 같았다. 슬픈 동화책을 읽었을 때도 감정이입하며 울고, 밥을 남겼을 때도 "남은 밥이 네 입속에 안 들어가서 슬프겠다" 하면 슬퍼하며 마저 먹었다. (딸에게는 안 통하는 방법)


그리고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이건 5살 때 엄마가 어디서 사준 거, 이건 6살 때 아빠가 어디서 사준거, 이래서 못 버리고 저래서 못 버리고, 또 요즘 잘 가지고 놀지 않았던 장난감을 꺼낼 때면 "그동안 안 놀아줘서 미안해. 오늘은 내가 잘 놀아줄게"라고 말하며 사랑하고 아껴준다. 책에 유모차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자신이 타고 다녔던 잃어버린 유모차가 생각나 "내가 애기 때부터 탔던 내 유모차, 나랑 함께 했던 유모차인데.. 그 유모차가 생각나서 너무 슬퍼" 하며 또 운다.


공부를 제법 잘 함에도 문제를 못 풀어내는 순간엔, '나는 공부를 못하는 것 같다'라며 자신감을 갖지 못할 때가 있다. 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너 자신을 사랑해 주라고 말해주지만, 아들이 그럴 때마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렇듯 자신을 많이 사랑하지 못하는 자존감 낮은 아이로 자랄까 봐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아들인 것치곤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을 조잘조잘 엄마에게 잘 이야기하는 수다쟁이 아이, 선생님한테 자주 혼나는 친한 친구를 걱정하는 아이, 아들은 울음이 많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도 많은 아이다. 


그래서 아들과는 감정을 나눌 때 이야기가 잘 통한다.


딸은 너무나 밝다. 


동네사람들이 딸을 보며 "ㅇㅇ이는 어쩜 이렇게 밝아요?"라고 물어볼 때면 "그냥 태생이 밝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태생이 밝은 아이, 동생에게 자기 먹을 것을 잘 나누어주지 않는 쪼잔한 오빠와 달리 딸은 오빠에게 성큼 반을 떼어주는 아이다.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없는 날에도 "엄마, 비 냄새가 나~"라며 비가 오는 것을 맞혀내고, 가을이 오려고 하는 여름 끝 무렵엔 "엄마 가을이 오려나 봐, 가을 냄새가 나~" 라며 가을을 맞이하는 아이다. 이쯤 되면 후각이 좋은 건가? 내가 어딜 부딪쳐서 아프다고 울면 같이 울어 주고 연고와 밴드를 후다닥 가져와 붙여주는 아이. 


딸은 이렇게 사랑스럽다. 


이런 딸의 모습을 보며 나도 온전한 가정에서 상처 없이 자랐다면 '6살 땐 이랬을까?', '딸처럼 이런 행동을 했겠지?' 하고 어릴 적 나를 회상해 본다. 


만약 그랬다면 나도 이렇게 딸이 가진 해맑음의 모습을 지금까지 잘 지키며 살지 않았을까? 


이런 딸의 해맑음이 항상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딸의 해맑은 모습이 어른이 돼서도 잘 간직될 수 있도록, 

그래서 사람들에게 해맑음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아이로 잘 키우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우리 아이들은 그냥 다 나 닮았네. 

이로써, 우리 집에 '이성이'는 단 한 명이고 감수성 넘치는 '감정이'만 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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