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첫째 아이가 많이 아파 3일 동안이나 학교에 가지 못했다. 속이 답답하고 어지럽고, 고열에, 몸살에, 날이 갈수록 증상이 더 심해져 병원을 옮겨가며 수액까지 맞고 겨우 나았다. 요즘 엔테로바이러스라는 열을 동반한 바이러스가 유행이란다. 이렇게 3일을 내리 아프니 아이를 돌보느라 벌써 한 주의 반이상이 흘러갔다.
드디어 아이가 등교를 하고 나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만의 시간에 들떠 편하게 핸드폰을 손에 쥐고 소파에 누웠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오래간만에 생긴 여유에 SNS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어느 한 피드를 보고 멈췄다. 우아하게 생긴 인플루언서가 예쁜 주방에서 우아하게 요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맘 속으로 우와, 우와를 연발하며 홀린 듯이 그녀의 피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출처 - Unsplash
- 내가 좋아하는 볼륨 있는 단발머리, 늘씬한 몸매에 꽃무늬 앞치마를 둘러맨 우아한 그녀의 모습에 우와~*
- 나의 로망이던 주방가구들과 넓은 대면형 주방에 우와~*
- 내가 갖고 싶은 접시, 그릇, 냄비, 믹서기 등 예쁘고 기능 좋은 주방 장비빨에 우와~*
- 나도 하고 싶은 수육, 장어요리도 척척 해내는 그녀의 요리 솜씨에 우와~*
- 공구 사업을 하며 출장을 다니는 커리어우먼 같은 모습에 반해 또 한 번 우와~*
그렇게 나는 '우아미'와 '세련미'가 철철 넘치는 인플루언서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평소 살림에 관심이 많은지라 '나도 저렇게 예쁜 주방에서 우아하게 요리하고 싶다.'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갖지 못한 환경을 부러워하며 그녀와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난 왜 저만큼 부지런하지 못하지?', '나도 저런 주방기구가 있으면 더 잘할 텐데..' 건설적인 생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아침 댓바람부터 비교의식에 사로 잡혀 남을 부러워하는 모양새라니...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단편적인 모습에 속지 말자.
따지고 보면 SNS에 보이는 인플루언서의 좋은 모습들은 단편적인 이미지이다. 그래서 피드 속에 보이는 이미지만 보고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난, 순간 현혹되어 피드 속 그녀의 모습들을 마냥 부러워한 것이다.
인플루언서들 뿐 아니라 사람들은 저마다의 단편적인 모습들이 있다. 남들에게는 좋은 이미지, 단편적인 모습들만 보인다. 스트레스받는 모습, 짜증 내는 모습, 화내는 모습 등 여러 모습들이 분명 있지만, 그것을 대중들에게 내보이진 않는다. 그것도 본인들의 모습 중 하나일 텐데 말이다.
이처럼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 타인이 원하는 이미지의 모습만 갖추고 사는 것이 SNS 속 세상이다. 물론 피드 속 뿐만 아니라 24시간을 쪼개고 아껴서 많은 일을 하며 부지런히 살아가겠지만, 그래서 더 소파에 게으르게 누워 피드를 보는 나 자신을 질타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 픽사베이
나는 나다, 나를 존중하자.
얼마 전 아들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나면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진 않지만 첫째를 동생하고 비교할 때가 가끔 있는데, 외출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옷 입으라고 지금 몇 번째 말하니!, 동생은 벌써 옷 알아서 입고 나갈 준비 다 했잖아'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왜 자꾸 나를 동생하고 비교해, 나는 나고 걔는 걔야!'
뭐 당연한 말이지만 아들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그래, 너는 너고 동생은 동생이지. 각각 다른 인격체니 같을 수는 없겠지. 둘째는 딸이라서 그런지 뭐든 눈치껏 빠릿빠릿 잘하는데, 아들은 몇 번씩 잔소리를 해야 겨우 움직인다. 이런 답답한 모습 때문에 아들에게 잔소리가 점점 늘지만, 아들의 말이 맞다.
나는 나고 걔는 걔다, 나와 그녀는 인격체가 다른데 굳이 비교를 할 필요가 뭐 있나
각각의 개성이 다르고, 강점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보이는 이미지 하나로 내 삶을 비교하며 불필요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또 세상 부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래! 나도 나만의 주방이 있고, 나름 요리도 잘하고, 맛있는 걸 차려줄 수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 라며 더욱 분발하여 저녁준비를 열심히 했다. 오랜만에 불고기와 호박잎쌈밥이 식탁에 올려졌다.
저녁밥을 차리며 남편에게 오늘 느꼈던 감정을 말하니 '그게 왜 부러워?,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요즘 써니가 믿음이 약해진 것 같아' 라며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뭐, 이해를 바란 건 아니지만 약간의 공감은 해줄 줄 알았는데, 역시 무리였군...
남들을 잘 부러워하며 감정에 휘둘리는 유리 같은 나의 멘탈과 달리, 남편은 멘탈이 강한 편이다. 절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자신감이 넘친다기보다는 불필요한 것에 감정소비를 하지 않는 편이다. 남편은 연애 때도, 결혼해서도 가끔 자신감 없이 축 쳐져있는 나를, 나 자신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며 나의 장점을 북돋아줬던 사람이다. 이러한 면을 좋아해서 결혼하게 된 건데, 그런 사람한테 공감을 받으려는 내가 잘못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