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함께한다는 것

by 글지으니



이번 주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 <태어난 김에 글쓰기>를 yes24에 펀딩 했다는 책을 구입하고 그전에 쓴 <돈 버는 브런치 글쓰기>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를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집에 책이 쌓이는데 이 두 책도 꼭 갖고 싶어 졌다. 이 책을 사지 않다면 내가 읽으며 느꼈던 내용을 옮겨 적든지 해야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읽고 싶은 책도 많고 그 시간에 밖으로 나가고 싶기도 하면서 시간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 안타깝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으니 나는 타협을 해야 한다. 나는 오늘 밖에 나가지 않고 이 책을 사지 않으려면 다시 한번 보든지 하면서 내 것으로 기록을 남기든 어떠한 방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어릴 적 들었던 동화 <파랑새>가 있었는데 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으로 멀리서 찾아 헤매던 행복이 사실 가까운 곳인 집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오늘 <나는 행복한 방사선사입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웃기도 하고 가슴이 찡하기도 하고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


"천 번을 지우고 써서 재미있는 문장을 만드는 작가"라는 천재 작가의 <돈 버는 브런치 글쓰기> <나는 행복한 방사선사입니다>라는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작명인 이름처럼 천재 작가라고 불릴만하게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읽었다.


처음에는 너무 부러워서 얄미웠지만 책을 덮었을 때 나는 천재작가에 감사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축복이 다 다른가 보다. 천재 작가에게는 천 번을 지우지만 재미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육체적인 아픔이 있었다.


나는 책 한 권을 읽기 위해서 여섯, 일곱 시간이 걸리고, 글을 쓰는데 서너 시간이 걸려도 이 작가처럼 이렇게 재밌게 쓸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건강한 몸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천재 작가 비록 몸은 아프지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남편도 만성질환으로 평생 약을 먹거나 부작용으로 자주 아프지만 그때마다 이겨내며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 덕분에 행복은 건강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행복은 함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느끼며 읽고 쓰는 것이 서툴고 오래 걸리고 비록 멋진 글을 못 쓸지라도 건강하니 나 우리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재밌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듯이 사소한 일상의 기쁨과 아픔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서 이름처럼 천재 작가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천재 작가 덕분에 그동안 평범한 엄마로 사소한 일상도 이렇게 멋진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오늘 나는 천재 작가의 책 두 권을 읽고 내가 얼마나 축복받고 행복한 사람인지 알았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더 하고 싶고,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할까? 오랜만에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주말 하루를 시작했다. 시간만 있으면 자유롭게 바깥에 혼자서라도 잘 갈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에나 혼자서 나가거나, 혼자 즐기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도 별 감흥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혼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옆에 있는 한 사람이 걸리적거리고 불편했는데 주말이라 밖에 바람이라도 쐬려고 하니 혼자라는 것이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만 났다. 늘 함께해서 불만이던 내가 이제는 함께 하는 사람이 이리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줄 몰랐다.


이런 말을 고사성어로 "감탄고토(甘呑苦吐)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한동안 읽고 싶은 책도 많은데 항상 시댁에 가야 하고 남편이 술 한잔 하면 2~3시간 시나락 까먹는 소리를 들을 때면 시간이 아까왔었다.


일보다 가족을 우선하는 남편이라 가정적이어서 좋았지만 경제력이 좀 더 있었으며 하며 아쉬웠었다. 하지만 나도 천재작가가 아닌 것처럼 남편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이제는 혼자라서 편하기보다 부딪기며 힘들고 내 시간이 적어지더라고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실감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