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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일상에서의 이야기들 1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by 융이라고 불립니다

예전에 독일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을 때,

사장이 뜬금없이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융, 너 로또당첨되면 그래도 여기서 일할거야?"

갑작스런 질문에, 응, 당첨안 되도 일 안 할거야! 라는말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나도 뜬금없이 '사실'만 말했다.

"음...그런 일 없을거야" 라고 말하자 나보다 10살은 젊은 사장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난 로또를 안 하거든"

그리고 휙 돌아서서 내 일에 집중했다.

사실, 그때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밥먹을 새도 없이 일해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가면, 집에 와서야 저녁을 먹으니

8시간은 족히 공복을 유지했다.

인생 최저몸무게를 찍었던 때였다. 그거 하나로 감사했던 시간들이었다.

사람은 덜 쓰고 메뉴는 다양하게 늘리려고 하던 사장님 덕분에, 동료들은 3개월을 못 견디고 그만 뒀다.

그 상황에서 5년을 일을 했으니, 한국인의 끈기란...나도 내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저 말 잘 듣고 5년을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사장이랑 대판 싸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젊은 사장이다보니 서투른 것도 많았고 주방에서 나를 도와준답시고 씻지도 않은 손으로 음식에 손을 대서 나한테 손싸대기를 맞은 적도 있다.

다른 동료들을 대신해서 내가 봉기를 든 적도 여러번이었다. 매니저의 이간질로 나한테 오해를 한 적도 있다. 이런저런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자르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수많은 일들 속에서도 어쨌든 진정성은 통하는가보다. 나중에 퇴직하고 나서도 남은 동료에게 내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잘 했는지 종종 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잘 하지. 하면서도 참 뿌듯했다.


독일 병원은 대기시간이 길다. 예약을 하고 와도 내 예약시간에 진료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병원의 대기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큰아이가 세살무렵이었나? 소아과에 갔을 때다.

우리 아이들의 소아과는 지금은 아버지의 병원을 물려받은 젊은 의사가 서너 명의 의사를 고용해 제법 큰 병원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 아버지 의사와 여의사 이렇게 둘이서 진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겨울의 소아과는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감기로 늘 붐빈다.

예약을 했는데도 제시간에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그리고 30분 1시간... 1시간 반이 넘었는데도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 한 아이가 아프면 다른 아이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잠이 깬 둘째는 유모차에 앉아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언제 우리 차례냐고 두어 번 물었는데도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1시간 반이 넘어가자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괜스레 멈추지 않는 눈물을 겨우 닦고 있을 때 이름이 불렸다. 2시간이 조금 못 되었을 때다. 예약이 있었는데도 2시간 가까이 기다린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급기야 우리 담당의던 여의사 앞에 앉았을 때 내 눈은 붉게 퉁퉁 부어있었다. 의사가 놀라서 왜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예약을 했는데도 2시간을 기다렸다고,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아마도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보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었다. 사실 그즈음 힘들 때는 늘 타향살이라서.로 귀결되곤 했긴 하다. 그런 결핍의 이유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때였다.

뜬금없이 나온 나의 말은 파장이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독일은 '인종차별'이란 것은 거의 금기시되는 말이다.

아마도 히틀러시대의 영향인 듯 하지만 학교에서도 우리는 '인종차별 없는 학교'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력할 정도니.

그런데 내가 병원에서 내가 인종 때문에 차별받는 것 같다고 했으니... 의사는 깜짝 놀라서, 역시 더 깜짝 놀라 하얗게 질린 얼굴의 간호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간호사는 응급이 많아서 순서가 밀렸다고 했다.

그래도 예약을 했는데 그렇게 기다리게 하면 되냐고 주의를 줬고, 나에게는 친절하게 상황설명을 하고 다음부터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그 후로, 정말 그런 일이 더 이상 없었다. 소아과를 가면 나를 보는 간호사들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예약을 하고 갈 때는 그다지 많이 기다리지 않았고, 혹시나 예약이 없이 응급으로 갈 때면 오래 기다린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요주의 인물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빠른 대기시간으로 인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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