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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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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피 Sep 27. 2020

라디오스타! 고품격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라디오스타’는 MC 김구라의 말대로 ‘게스트를 쥐어짜는’ 방송으로 악명이 높다. 내가 라디오스타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딱 저랬다. 게스트의 약점을 공격하는 하이에나 같은 예능. 실제로 제작진들은 MC들에게 하이에나 CG를 자주 입히기도 한다. 악명 높은 ‘라디오스타’ 회차 중에서도 가장 수위가 높았던 방송을 꼽자면 2014년 방송된 소녀시대 회차(369회)일 것이다.      



당시 소녀시대는 연이어 터진 멤버들의 열애 기사로 화제가 되고 있었다. ‘라디오스타’는 신곡 홍보를 위해 출연했을 소녀시대를 ‘지금은 연애시대’라는 타이틀로 소개했다. 적당히 선을 지키는 인터뷰가 됐다면 좋았을 텐데 당시 방송은 참 무례했었던 것 같다. 당시 출연한 멤버들 중에는 열애 기사가 난 멤버는 없었다. 김구라는 이 멤버 조합을 두고 ‘안전빵’만 출연시켰다고 표현했다. 걸그룹에게 열애설이 얼마나 타격이 큰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방송은 초반부 내내 게스트에게 타격이 클 폭탄 같은 질문만 던져 멤버들을 당황시켰다.      


이승기의 후배가 윤아를 만나면 형수님이라고 하냐는 MC의 질문(농담인 듯하지만)에 대한 게스트들의 반응이다. 아무도 재밌어서 웃지 않는다. 자고로 농담은 웃는 사람도 농담으로 받아들여야 농담이다. 덕분에 당시에 방송을 보던 나까지 눈치를 봤던 기억이 있다. 웃고 떠드는 예능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다수 등장했었다. 이후로 나는 ‘라디오스타’를 굳이 챙겨 보지 않았다. 그리고 6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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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가 달라졌다!      

소파에 누워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라디오스타’를 만났을 때,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게 1시간 내내 실실 웃었다. 기존에 ‘라디오스타’를 볼 때 느꼈던 감상과는 분명히 달라진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지 분석해보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변화가 컸는데 김구라 – 안영미의 조합, 매 회차 다르게 투입되는 스페셜 MC를 꼽을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매 회차 고정인 김구라 – 안영미 조합에 먼저 주목해보자. 



1. 김구라 – 안영미 조합이 이루는 독설의 균형     


김구라가 게스트에게 던지던 원색적인 질문과 독설이 안영미와의 장난스러운 투닥거림으로 대체된 느낌이 강하다. 김구라의 공격에도 안영미는 절대 참지 않는다. 더 받아쳤으면 받아쳤지 밀리는 느낌은 없다. 이 두 MC의 쌍방 독설이 묘한 안정감을 제공한다. 김구라의 캐릭터성과 ‘라디오스타’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게스트에게 불편함을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준다. 게스트 대신 싸워주는 안영미 덕분에 보는 시청자도 재밌고 편안하다.      



2. 게스트에 따라 수위가 조절된 질문


‘라디오스타’는 신인이든 아니든 게스트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출연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게스트에 맞게 수위를 많이 조절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정도 노련하고 MC와도 친분이 있는 게스트라면 재미 위주의 질문을, 신인 아이돌처럼 이제 막 연예계에 발 들인 햇병아리라면 강점을 부각할 수 있는 질문 위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또 게스트가 자신 없어 하면 응원을 해주거나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는 넘어가 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예전의 ‘라디오스타’가 익숙했던 나에겐 그 지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3. 게스트도 4명, MC도 4명!        

‘라디오스타’는 4명의 MC와 4명의 게스트가 출연한다. 게스트를 1:1 마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덕분에 ‘라디오스타’는 게스트의 새로운 모습, 비하인드스토리, 의외의 면모를 밝혀내는 데에 탁월하다. 제작진과의 철저한 사전 인터뷰를 통해 추려진 에피소드들은 빠짐없이 화두 위로 오른다. MC가 한두 명이었다면 놓칠 수도 있는 웃음 포인트도 MC가 4명이니 놓칠 걱정이 없다. 단순히 질문만 다양한 게 아니라 각자 정해진 롤을 안정적으로 수행한다. 아래의 사진은 MC들이 게스트에게 질문을 던지고 리액션을 하는 과정을 캡처해 놓은 것이다.      



4명의 MC의 합은 대체로 이런 흐름이다. 각자 대본 상의 질문을 던지고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는다. 김구라는 특유의 캐릭터가 가진 대로 ‘아는 척’을 하거나, 가벼운 트집을 잡는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느낌이다. 안영미는 리액션을 크고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분위기를 유하게 만든다. 김국진은 김구라의 질문으로 이야기가 새면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흐름을 잡아주거나 질문을 통해 리액션을 한다. 화면의 중앙에 김국진을 배치한 것도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렇게 4명의 MC가 적절히 합을 맞춰가면서 게스트로 하여금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의 ‘라디오스타’에서도 이러한 역할 분배가 있었지만 MC의 성향이 대체로 모두 강했다. 게스트 입장에서 곤란할 만한 거친 질문이 웃음 포인트로 소비됐다. 하지만 달라진 ‘라디오스타’의 웃음 포인트는 게스트의 약점을 공격하는 데에서만 나오진 않는다.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생방송 하기 직전 굉장히 떨었다거나, 박진영이 알고 보니 ‘재활피’라거나, 현아가 안무를 만드는 과정에서 싸이의 과도한 간섭이 부담스러웠다는 에피소드들에는 게스트의 약점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라디오스타’가 아니라면 알 수 없었을 에피소드들이 시청자의 흥미를 당기고 웃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지상렬이나 광희처럼 MC들과 깊은 친분이 있고 연예계 생활을 오래 한 입담 좋은 게스트라면 MC들과의 여전히 작은 말다툼으로 재미를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뭐든지 적당히 해야 한다. 너무 싸우기만 하면 나 같은 시청자들은 슬슬 기 빨리는 느낌에 채널을 돌린다. MC와 친한 게스트여도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라디오스타’는 분명히 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라디오스타 곳곳에서 게스트를 배려하는 고민의 흔적들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수요일 밤을 위해 제작진들이 재미있는 게스트 조합을 찾고 섭외하는 데에 더 힘써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순한 맛은 아닌! 무엇보다 어렵다는 ‘적당한’ 수위를 지키는 고품격 음악방송 라디오스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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