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잊혀지는 시대에서, 나만의 생각을 붙잡는 한 가지 방법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속임을 당하고(學而不思則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思而不學則殆)." - 『다산의 마지막 질문』 中
다산 정약용이 강조한 공부의 원칙은 다섯 가지다. 폭넓게 배우고(博學), 끊임없이 묻고(審問), 깊이 생각하고(愼思), 분명하게 가려내고(明辨), 독실하게 실천하는 것(篤行). 그중에서도 위의 구절은 공부의 두 축인 '배움'과 '사유'를 이야기한다. 배우기만 하면 남의 생각에 휘둘리고, 생각만 하면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다. 그래서 배우고 생각하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비로소 공부가, 나아가 삶이 온전해진다는 뜻이다.
정약용의 글 곳곳에서 반복하여 말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는 언제나 "나"를 중심에 두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나"는 이기적인 자기중심이 아니다. 세상의 지식 앞에 당당히 선 주체적인 "나"를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롭게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이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삶에 어떻게 스며들 수 있을까?", "혹은 왜 동의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걸러낸 것만이 오롯이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태도는 결국 타인의 사고에 휘둘리는 삶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오롯이 살기 위한 주체적인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약용은 그 방법으로 '초서 독서법'을 제안한다. 초서란 글에서 마음에 파고든 부분을 뽑아 기록하는 것으로, 요즘 말로 하면 '메모하며 읽기'라 할 수 있다. 가슴을 울린 구절을 베껴 적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다. 빠르게 읽지는 못하지만, 대신 자신의 흔적을 책 속에 새길 수 있다. 기억은 금세 흐릿해지고 감정은 쉽게 휘발되지만, 기록은 그 순간의 사유와 울림을 오랫동안 붙잡아둔다. 그렇기에 몇 달이 지나 다시 꺼내 읽어도, 메모 한 줄을 통해 그때의 내가 생생히 살아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독서 중에 남겨둔 메모 덕분이다. 그때의 짧은 글이 기억의 등대가 되어, 다시금 공부의 자리로 나를 불러세웠다.
요즘 우리는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아주 쉽게 정보의 홍수를 만난다.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지식을 누리고 쌓을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방대한 정보만큼이나 특정 의도를 가진 거짓 정보, 교묘하게 사실을 비튼 왜곡된 정보 또한 가득하다. 특히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는 짧은 시간에 의도한 메시지를 주입하기 위하여 자극적인 내용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 아무런 필터 없이 그대로 노출된다면, 우리는 머릿속에 지식만 가득한 채 누군가의 의도대로 살아가는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생각은 붙잡지 않으면 흘러가고, 기록하지 않은 사유는 언제든 왜곡되거나 잊혀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 느리더라도 우직하게, 때로는 고통스럽더라도 꿋꿋하게. 공부란 화려한 속도의 경쟁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며 단단하게 쌓아가는 꾸준함이라 믿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고 난 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 그냥 흘려보낼텐가, 아니면 한 줄이라도 적어 남길텐가? 당신이 남긴 작은 기록 하나가, 언젠가 흔들리는 당신의 삶을 단단히 붙들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