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태도에서 본분의 깊이를 배우다
공자가 태묘에 들어가서 일마다 물었다.
어떤 이가 말하길 '누가 추 땅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했는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묻더라.'라고 하니, 공자가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예(禮)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中
예(禮)의 대가인 공자가 태묘의 제사 절차를 일일이 묻고 다녔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누가 저 사람을 보고 예를 안다 했는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왜 사소한 질문을 던져 스스로를 낮추었을까. 그의 질문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묻는 '내용'이 아니라 묻는 '태도'에 관한 문제였다.
질문에는 세 가지 역할이 있다. 첫째는 순수한 앎을 위한 역할이다. 이것은 다산 정약용이 공부의 원칙으로 삼은 심문(審問), 즉 자세히 묻고 깊이 생각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이는 단순히 정보의 빈칸을 채우는 것을 넘어선다. 하나의 질문을 던져 얻은 답에서 다시 새로운 질문을 찾아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을 따라 문제의 가장 깊은 뿌리까지 파고드는 탐구의 여정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배움은 '나는 모른다'라는 정직한 자기 성찰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이 용기 있는 고백이야말로 닫혀 있는 사유의 문을 활짝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아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역할이다. 영화 <빅쇼트>의 첫 장면은 마크 트웨인의 명언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위험에 빠지는 것은 무언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확실히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큰 실수는 대부분 '모름'이 아니라 '섣부른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런 차원에서 질문이란 단단하게 굳은 내 생각의 지반을 스스로 흔들어보는 자기 검열의 도구다. 스스로 일으킨 작은 균열만이, 외부의 거대한 충격에 무너지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묻는 사람은, 세상을 좀 더 유연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겸손은 지식의 출발점이 아니라, 지혜에 도달하는 마지막 경지다.
셋째는 상대를 존중하고 세워주기 위한 역할이다.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더라도, 그 자리의 책임자에게 공손히 묻는 것은 그의 역할과 자부심을 인정하는 최고의 예의다.
노련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단원에게 "이 파트는 어떻게 연주하고 싶소?"라고 묻는 것처럼, 질문은 상대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그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무대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며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진정으로 현명한 리더는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에게서 최선의 답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다.
이처럼 질문은 지식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관계를 채우는 태도에 가깝다. 나의 무지를 인정하고(용기), 나의 확신을 의심하며(겸손), 상대의 존재를 존중하는(배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예(禮)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예를 삶의 모든 순간으로 확장한 것이 바로 '본분(本分)'이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이는 낡은 위계질서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조화의 원리를 담은 말이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제 소리를 낼 때 가장 아름다운 화음이 탄생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무게를 알고 그 의무를 다하는 것. 그것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질서이자 '예'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세상은 숨 가쁘다.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만큼 관계도, 가치도 빠르게 소비된다.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과정은 무시되고,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수고는 잊혀진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 이익이라는 좁은 섬에 갇힌 채 소리친다. "세상이 이래서",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하지만 세상의 문제는 제도 이전에 태도의 문제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나는 내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부모로서, 사회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나의 본분을 온전히 채우고 있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솔직하게 마주할 때 진짜 변화는 시작된다.
공자는 지식을 뽐내기 위해 묻지 않았다. 삶의 태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어제의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물었다.
나 또한 오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상황을 탓하기 전에, 내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
거창한 목표를 외치기 전에, 오늘의 본분을 먼저 돌아본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마땅한 태도로 해내는 것. 방향이 옳다면 속도는 중요치 않다. 묵묵히 내딛는 하루의 본분이 쌓여 결국에는 원하는 삶의 풍경에 닿게 할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