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흔들리는 마음을 활자로 묶어두는 시간

유혹과 충동 앞에서, 기록으로 마음을 잠그다

by 끄덕이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해야 할 일이 있다.

젊었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으므로 색을 경계해야 한다.

장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강성해지므로 다툼을 경계해야 한다.

노년이 되어서는 혈기가 쇠약해지므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오늘도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핸드폰 켜지 말고 독서로 시작해야지'
'퇴근 후에는 집에 가서 운동해야지'
'야식 먹지 말고, 잠들기 전에 포스팅이라도 올리고 하루 정리하고 자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다짐은 사소한 계기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진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유로, 야근했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치였다는 이유로. 정작 결심해놓고는 온갖 변명을 덧붙이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하루 전의 나와 한 약속조차 이토록 붙들기 어렵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았던 이유를 몸소 증명하고야 만다.


공자는 나이에 따라 색과 다툼과 탐욕, 이 세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이건 나이에 따라 나눌 일이 아니라, 욕망의 형태만 달라질 뿐 평생 경계해야 할 것들에 가깝지 않을까. 색, 다툼, 탐욕. 이 셋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인사부에서 근무한 한 선배가 있었다. 나보다 여섯 살 정도 많았고, 조직 안에서는 소위 에이스였던 사람이었다. 일도 잘했고 머리도 빨랐다. 자연스럽게 윗사람 눈에 띄었고, 승진도 남들보다 빨랐다. 그 선배는 종종 나와 동기들에게 말했다. '항상 초심을 잃지 말고 살아야한다.' 그 말이 당시 꽤 그럴듯하게 들렸던 이유는, 적어도 겉보기엔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지방으로 잠깐 발령이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가족 명의로 회사를 차린 후 돈을 잘 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리고 1~2년쯤 지났을 때, 그 선배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됐다.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업무상 배임으로 징역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지방 근무 시절 거래처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교묘하게 리베이트를 만들 수 있는 구조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장기 휴가를 간 뒤 회사를 차리고 퇴사한 것도 결국 그 흐름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 선택은 오래가지 못했고, 덜미를 붙잡혔던 것이다.


그때는 그 선배가 참 실망스러웠다. 꼰대 같은 면은 있었지만 분명 똑똑했고, 자기만의 업무 철학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실망이라는 단어로는 뭔가 설명되지 않은 게 있었다. 내가 의아했던 건 '그 똑똑한 사람이 왜?'라는 의문이었다.


정말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랬을까. 어쩌면 어느 순간 크게 흔들렸던 것은 아닐까. 작은 타협이 한 번 생기고, 그걸 정당화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다음부터는 점점 선이 흐려졌던 건 아닐까. 물론 잘못은 잘못이다. 결과는 분명하다. 다만 그 선배의 추락은 특별한 악인의 서사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지 못한 평범한 인간의 비극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그 일을 회상할 때마다, 나는 남을 판단하는 마음보다 먼저 사람 마음의 취약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취약함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다시 색, 다툼, 탐욕으로 돌아와 본다. 이 셋의 공통점은 모두 찰나의 유혹과 충동에서 시작되어 교묘한 자기합리화로 완성된다는 점이다. 색은 욕망의 형태로, 다툼은 감정의 폭발로, 탐욕은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안쪽에서는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뒤흔든다. 순간의 자극이 이성을 앞지르고, 그 다음엔 늘 자기합리화가 따라붙는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흔들림이 줄어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인 것 같기도 하다. 학창시절에는 삶의 반경이 단순했다면, 사회로 나오고 나서는 비교할 것도 많아지고, 욕망의 대상도 많아지고, 감정이 부딪히는 일도 많아진다. 사람을 흔드는 요소가 훨씬 다양해진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렇기에 다산 정약용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천하에서 '나'보다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서 지키지 않는가."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이조차 '나를 지키는 일'의 막막함을 토로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 그만큼 나를 지키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며,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일만큼이나 고된 노동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어려운 일이라며 손을 놓고 싶지는 않다. 부족하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한 번씩 돌아보며 살고 싶다. 나는 그 수단 중 하나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이전에는 책을 읽고 좋은 생각이 들어도 그냥 마음속에만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형태가 없는 생각은 며칠만 지나면 금새 흐릿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옮겨 적기 시작하니, 기억이 오래 남는 것은 물론이고 내 생각도 한 번 더 정리된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시간이 흔들리는 마음을 활자 위에 잠시나마 붙잡아 두는 시간이 된다는 점이 좋았다.


사람마다 자신을 붙잡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운동일 수 있고, 누군가는 기도일 수 있고, 누군가는 대화일 수 있다. 내게는 그것이 기록이다.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디에서 힘들었고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붙잡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결심은 자주 무너진다. 하지만 무너질 때마다 다시 붙드는 연습을 하는 사람과,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의 하루는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조금씩'이 쌓여, 결국 미래의 나를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