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의외로, 인생은 큰 결심에 반응하지 않는다

작게 반복된 시간이 결국 나를 닮게 한다

by 끄덕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본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성에 따라 멀어진다."

또 말하기를 "오직 상지와 하우는 옮기지 못한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중



'상지'와 '하우'에서 상(上)은 좋은 것을, 하(下)는 나쁜 것을 가리킨다. 지(智)는 지혜이고 우(愚)는 어리석음이다. 결국 상지는 최고의 지혜를을, 하우는 극도의 어리석음을 뜻한다. 공자는 이 둘만은 "옮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즉 바뀌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지혜로운 이는 진흙탕 속에서도 본연의 맑음을 잃지 않고, 완고하게 어리석은 이는 맑은 물속에서도 스스로를 정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를 한 번 멈춰 세운다. 좋은 사람 곁에 오래 머물렀는데도, 또는 좋은 책을 읽었음에도 좀처럼 내가 달라지지 않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정말로 사람의 격차는 타고나는 것일까.




공자는 다른 문장으로 그 답의 방향을 제시한다. "본성은 서로 가깝다." 사람은 태어날 때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태어난 환경의 격차를 잠시 접어두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놓고 말할 때). 그리고 곧바로 덧붙인다. "습성에 따라 멀어진다." 차이는 타고난 본성보다, 살아오며 몸에 밴 습관에서 벌어진다는 주장이다. 본성이 뿌리라면, 습관이나 습성은 그 뿌리가 뻗어 나가는 길인 것이다.


그렇다면 습성은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우리는 여태컷 본인 스스로를 만들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많은 것이 나를 결정한다. 집안의 분위기, 자주 만나는 사람, 일상의 공간. 여기에 거시적인 사회와 경제의 흐름까지 얹히면, 나의 삶은 내가 고른 것보다 이미 주어진 것들로 더 많이 채워진 듯 보인다. 그래서 종종 무력해진다. 이 흐름 앞에서면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그럼에도 끝까지 남는 한 가지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다. 완벽히 자유롭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다음 행동만큼은 내가 정할 수 있다. 오늘 어떤 말을 할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당장 시작할 일과 미룰 일을 구분하는 것 등. 이런 사소한 선택의 연속이 나의 습성을 이루고, 결국 나를 만들어가는 바탕이 된다.


물론 말은 쉽다. 나이가 들수록 이미 굳어진 버릇은 고치기 어렵다. 나쁜 습관을 끊는 것도 힘들고, 좋은 습관을 세우는 것도 생각보다 더디다. 우리는 공자 같은 성인도, 정약용 같은 실천가도 아니다. 그래서 늘 '작게 시작하라'는 말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저항하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선택부터 바꾸는 것이다.


습관은 단번에 새겨지지 않는다. 늘 하던 선택이 반복되고, 그 반복이 어느 날 성격처럼 굳는다. 그래서 지금의 선택이 중요하다. 당장 눈에 띄지 않아도, 오늘의 사소한 행동은 미래의 나라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결국 질문은 다시 이렇게 돌아온다. 나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걷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의 작은 선택 하나를, 어느 쪽으로 옮겨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