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부유하게 하고, 가르쳐야 한다

먹고 사는 기반 위에 삶의 기준을 세우는 일

by 끄덕이다

공자가 위나라에 갈 때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공자가 "백성이 많구나!"라고 하자 염유가 물었다.
"백성이 많은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들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
다시 염유가 물었다.
"부유하게 된 다음에는 또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가르쳐야 한다." -『다산의 마지막 질문』 중



대학교 경영학원론 시간에 흔히 배우는 이론이 있다. 바로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다. 사람이 무엇을 원동력으로 움직이는지, 욕구가 발현되는 순서를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① 생리적 욕구, ② 안전 욕구, ③ 사회적 욕구, ④ 존경 욕구, ⑤ 자아실현 욕구.


그 중에서도 생리적 욕구는 말 그대로 삶의 바닥이고 기초다. 입고, 먹고, 자는 문제. 의식주의 영역이다. 이 이론이 주는 직관은 단순하다. 바닥이 흔들리면 위층을 올릴 수 없다는 것. 배가 고프고, 내일 잘 곳이 불안한 사람에게 "더 큰 꿈을 가져라"는 말은 때로 너무 공허하다. 마음이 빈약해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생존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예문에서 공자의 대답은 놀랄 만큼 그 직관과 닮아 있다. 사람이 많아졌다면, 그 다음은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다음은 그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공자의 "부유하게 하라"는 말은 단지 재물을 쌓게 하라는 주문이 아니라, 최소한의 불안을 덜어주는 사회적 토대에 가깝다. 가난이 곧 악은 아니지만, 가난이 불안을 낳고 불안이 선택지를 좁힌다는 현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르쳐야 한다"가 나온다.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삶의 방향과 기준을 세우는 힘. 그 힘은 배움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신념을 가진 사람도 배고픔과 추위 앞에서는 무력해지기 쉽다. 우리는 정신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몸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삶을 자주 비틀어 놓는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결심이, 어느 날 카드값과 월세 앞에서 흔들리는 순간들. 그건 의지의 부족이라기보다 사람이기에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생각해보면, 큰 사유와 거대한 문장도 결국은 '시간'과 '여유' 위에서 만들어진다. 칼 마르크스가 그러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이미 자본주의의 모순을 예리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사유가 한 권의 체계로 완성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마르크스의 젊은 시절은 가난과 유랑, 생계를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생각이 생각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의 수입과 안정된 거처가 마련되고 나서야, 그는 마침내 사유를 정리할 수 있었다. 삶이 겨우 숨을 돌리자, 사유는 그제야 문장이 되었다.




요즘 내 고민이 깊어지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말했던 그 특이점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며, 구체적으로 AI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음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다가올 변화 앞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할지, 그리고 내 아이에게는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요새는 생각이 자주 그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생각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는다. 사색은 방향을 잡아주지만, 길을 내는 건 결국 실행이다. 그래서 최근 나는 투자뿐 아니라 사업과 일의 구조를 더 자주 들여다보고 있다.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은 욕망도 솔직히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 가치를 어떻게 증폭시킬 수 있는지, 실제의 세계에서 부딪혀 보며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사람이, 내 아이가 최소한 의식주 때문에 삶의 대부분을 소모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서로를 돌볼 여력도 생기고, 공동체를 살필 힘도 생기며, 스스로의 삶을 설계할 수 있으니까. 결국 '부유함'은 목적이 아니라 조건이다. 그리고 그 조건 위에서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은 공자가 말한 것처럼 가르침, 배움이다.


다산 정약용의 말을 빌려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단지 먹고 살기 가능하도록 베푸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그 힘은 배움에서 얻을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그 순서를 잊지 않으려 한다.
살아갈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 배움의 힘을 쌓는 것.
그렇게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