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겨울이 깊어야 열매가 떨어진다

지름길은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이다

by 끄덕이다

자하가 거보읍의 읍재가 되어 정치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서두르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중



이 대목이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다. 여기에 다산 정약용이 덧붙인 문장을 나란히 두면 사유는 더 깊어진다.


"겨울이 깊으면 열매가 떨어지고, 물이 흘러가면 도랑이 만들어진다. 이는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너희들은 모름지기 지름길을 찾아가야지, 울퉁불퉁한 돌길이나 덤불이 우거진 곳으로 가서는 안 된다."


여기서 다산이 말하는 지름길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니다. 그가 말한 지름길은 정도(正道),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말한 것이며,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대한 이야기다. 울퉁불퉁한 돌길과 덤불이 우거진 곳은 그 바른 길을 벗어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길이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편법을 찾거나 샛길로 새려는 태도를 경계한 것이다. 진짜 목적지에 온전하게 도착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결국 가장 정직한 길뿐이라는 확신이다.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일이 정도를 따른다고 해서 순탄하게만 풀리지는 않는다. 또한 남들이 가지 않는 샛길을 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사업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대개 다른 길에서 싹을 틔우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길의 모양'이 아니라, 그 길을 떠받치는 '기본의 유무'다.


뿌리 없는 새로움은 얕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운이 좋아 잠깐의 성공을 맛볼 수는 있겠으나, 지속되기는 힘들다. 물이 빠지면 바닥이 드러나듯, 본질이 없는 성취는 금세 주저앉기 마련이다. 이는 비단 사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관계도, 공부도, 자산을 쌓는 일도, 심지어 내 몸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잠깐의 성과가 기쁨이 될 수 잇다. 하지만 그 찰나의 성과에 도취되어 성과가 목적을 대체하는 순간, 삶의 방향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 자하에게 '조급하지 말라’고 일렀다. 더 정확히는, 조급함이 목적 자체를 훼손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서두르면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눈이 멀면 큰일을 보지 못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도덕적 훈계를 넘어 우리 마음의 구조를 짚어준다. 조급함은 대개 목표가 분명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흔들릴 때 드러난다. 기준이 흐려질수록 마음은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 사소한 승부, 타인의 반응에 집착한다. 지금 손에 잡히는 작은 전리품으로라도 불안을 잠재우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조급해지는가. 왜 작은 성공에 연연하며 마음을 졸이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확실함'이 부재할 때 조급함이 고개를 든다. 내 선택이 옳다는 확신, 내가 걷는 이 길에 의미가 있다는 확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확신. 이런 내면의 단단함이 약해지면, 마음은 외부에서 확실함의 증거를 찾으려 든다. 당장의 성과가 없으면 불안하고, 작은 성과 하나에 겨우 안심한다. 하지만 그 안심을 위해 길을 굽히기 시작하면, 어느덧 지름길을 찾다가 가장 멀리 돌아가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다산이 말한 "겨울이 깊으면 열매가 떨어진다"는 구절은, 기다림 또한 과정의 일부라는 자연의 섭리를 일깨운다. 겨울을 건너뛰려 애쓴다고 열매가 맺히지 않으며, 물이 흐르지 않고 도랑이 생길 리 없다. 결국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길이 열린다. 길은 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발로 밟으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바른 길은 때로 더디고 고루해 보이지만, 결국 가장 단단하게 목적지에 닿는 유일한 길이 된다.


인생에 요행으로 얻는 지름길은 없다. 다만 먼 길을 걷고자 할 때, 오랫동안 단단하게 다져진 큰 길로 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가장 빠를 뿐이다. 조급함이 발목을 잡을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꺼내어 마음을 다잡고 싶다. '지름길은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것은 본연의 목적일까, 아니면 그저 나를 안심시켜 줄 부차적인 성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