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혼돈 앞에 선 다양한 인간 군상

무너지고, 지배하고, 순응하고, 창조하다

by 끄덕이다

혼돈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한동안 길을 잃고 헤맸다.
이별과 상실, 실패와 좌절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혼돈은 매번 나를 전혀 새로운 세계로 끌어들였고,

그 낯선 감정 속에서 나는 무력하고 작아졌다.
그러나 이번 이별을 겪으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혼돈이라는 존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혼돈 앞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진정한 문제였다.

사람은 누구나 혼돈 앞에 서게 된다.
삶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과 감정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돈 앞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반응한다.


누구는 무너지고,
누구는 휘어지며 견디고,
누구는 방향을 바꾸며,
또 누구는 그것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이별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문득 카오스와 코스모스 사이에서 길을 찾던 과정이 단순히 나만의 여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나의 결론을 내려봤다.




혼돈 앞에서 인간은 네 가지 모습으로 구분된다.

1. 혼돈에 먹힌 사람 – 무너지는 자

이들은 혼돈 앞에서 모든 통제력을 상실하고 감정의 폭풍 속에 휘말려버린다.
스스로를 잃어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우울과 분노, 증오와 회피, 중독과 자기파괴.
이러한 감정들이 무너진 사람들을 지배한다.
결국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이들의 눈을 본 적 있다.
빛을 잃어버린 생기 없는 눈동자, 의미 없는 거짓말의 연속,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행동들...

이별 직후 거울 속에서 본 내 모습도 그랬다.
며칠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밥도, 물도 먹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쩌다 카페에 앉아 있어도 내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 있었고, 계속 같은 질문만 되풀이했다.
"왜 떠났을까?"

그저 이 한 가지 질문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 모두 잠깐씩은 이런 상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는 결국 혼돈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사람은 혼돈과 동화되어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그곳에선 모든 것이 왜곡되고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친구의 위로는 동정으로, 타인의 행복은 질투의 대상으로, 자신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느껴진다.

더 위험한 것은,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마치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별 후 3개월 동안, 나는 이런 어둠 속에서 헤매며 숨 쉬는 법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술에 의지하며, 무의미한 만남들로 공허함을 채우려 했다.

그때의 나는 카오스에 먹힌 사람이었다.

2. 혼돈을 지배하는 사람 – 시스템을 만드는 자

이들은 세상이라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사람들이다.
역사의 황제, 대통령, 지도자, 자본가, 설계자..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리울 뿐
그들은 불확실한 상황을 통제하고,
자신만의 규칙과 언어로 세상을 움직인다.
그들에게 혼돈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다.

하지만 여기엔 그늘도 있다.
질서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의 혼돈을 짓밟고 억압할 수도 있다.
자기 혼돈을 감추기 위해 외부를 통제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 나는 이 모습이 자기관리와 통제가 강한 것처럼 보였고,

이런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꼈지만,
그들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이들이 감춘 혼돈의 크기에 놀란 적도 있었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간 관리에 집착하는 상사, 완벽주의에 빠진 친구, 타인의 감정을 자신만의 논리로 재단하는 연인.
그들은 모두 혼돈을 두려워하기에, 통제를 통해 안전함을 찾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더 큰 혼돈의 씨앗을 뿌리는 경우가 많다.
질서에 대한 집착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 큰 압박과 고통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이런 통제의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억눌린 감정은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폭발의 크기는 얼마나 오래, 깊이 감정을 억눌러왔는지에 비례한다.

3. 혼돈에 순응하는 사람 – 체계 안에 머무는 자

이들은 혼돈을 이겨내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혼돈에 맞서기보다는 익숙한 시스템, 사회적으로 규정된 규칙과 프레임에 자신을 맞춘다.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나 또한
삶의 대부분을 이 위치에서 살아갔다.

'그냥 그런 거야.'
'다 그렇게 살아.'
'어쩔 수 없지.'

그 말들 속에는 포기와 수용이 뒤섞여 있다.
때로는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별 후 몇 달이 지나면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출근을 하고, 취미생활을 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났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하지만 가끔 밤에 홀로 남겨질 때면,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꼈다.

그것은 망가진 것도 아니고, 치유된 것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태였다.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하지만 그 속에서 '자기다움'을 잃는 순간,
그 사람은 혼돈이 아닌 '공허함' 속에 살게 된다.

이런 상태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형태다.
우리는 사회적 기대와 규범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적당'한 시기에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이별을 겪으면 '적당'한 시간 동안 슬퍼하다가,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런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감정과 욕망, 두려움을 마주할 기회를 놓친다.

그들은 혼돈을 피해가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와 질서를 발견할 기회를 잃는다.
그럼에도 이런 삶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삶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모든 순간마다 깊이 성찰하고 의미를 찾는 것은 지치고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다만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패턴을 반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4. 혼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 – 창조하는 자

이들이야말로 진짜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에 따라 철학자가 되기도, 과학자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예술가처럼 창조하기도 한다.
또한 아주 드물게, 예수나 부처,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이별이나 상실을 진심으로 겪고 나서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도 여기에 속할 수가 있다.

이들은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통에 감정적으로 휩쓸리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안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탐구하고 사색한다.

무너진 이유를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그 흔들림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낸다.

이별 후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그 시간을 돌아보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정을 토해내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나 자신과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발전했다.


'왜 나는 그런 사람을 선택했는지',
'왜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지',
'나는 관계에서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타인의 인정에 의존해왔는지,

내 안에 채워지지 않은 어떤 공허함이 있는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발견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다.

나는 그 혼돈의 경험을 통해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별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라 '배움'이 되었고, 상실감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회'로 변화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과 화해하고, 내 삶의 저자가 되어갔다.




이 네 가지 모습은 어떤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는 상황과 시간에 따라,
그때의 감정과 에너지에 따라,
이 네 가지 상태를 오가며 살아간다.


어제는 무너졌다가, 오늘은 통제하려 하고,
내일은 순응하다가, 그 다음날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식으로.


이것이 바로 인간 존재의 복잡성이고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여러 얼굴을 가진 다면체다.


이별을 겪으며 나는 이 모든 단계를 오갔다.
처음에는 완전히 무너졌고, 그 다음엔 삶을 철저히 통제하려 했으며, 그 후엔 그냥 일상에 순응했다.

그리고 지금,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어디에 가장 오래 머무느냐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삶은 이 네 가지 상태의 분포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너진 채로 보내고, 어떤 이는 통제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또 어떤 이는 평생을 순응하며 살고, 드물게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해와 창조의 상태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나는 어디에 머물고 싶은가?'

혼돈은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스승이자, 새로운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원료다.

그리고 그 혼돈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별과 상실이라는 혼돈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진정한 질서는 혼돈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만의 코스모스를 만들어간다.

이것이 인간의 여정이다.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혼돈에서 질서로, 무의미에서 의미로 나아가는 끝없는 여정.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별을 그려낸다.


오늘 밤, 나는 내 안의 혼돈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것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동반자다.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자,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안내할 나침반이다.


그래서 이제 묻는다.


"당신은 혼돈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