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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HDH Dec 14. 2021

제주 반달살기를 시작하며

오랜기간 묵혀왔던 것을 정리할 시간. 

별개 다 유행이다. 여행도 유행이고, 한 달살긴지 뭔지도 유행이다. 제주 한달살기가 유행이었던걸 보면 도시 사람들은 시골,자연 그리고 제주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제주를 처음 접하는 시기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에서 일것이다. 그 때는 제주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보다는, 수학 여행이라는 일상에서의 탈출이 더 컸던것 같다. 누구나 다 가는 성산일출봉에 가고, 제주 흑돼지 불고기를 먹고, 말뼈를 사라고 강매를 당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닭장같은 숙소에서 10시에 소등이 되면 몰래 자는척 하다가 티비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제주를 갈 일이 없었다가 24살 여름 방학에 무전 여행을 하면서 잠깐 들렀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제주를 갔냐. 일단 비행기는 돈없이 탈 방법이 없지만, 배는 가능하다. 목포 항구에서 제주를 가는 페리 선착장에 가면 트럭들이 줄지어 서있다. 트럭 운전수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무전 여행하는 학생인데 혹시 몰래 트럭에 타도 될까요? 이렇게 물었더니 아저씨가 기겁을 하면서 자기 표를 주셨다. 운전수들은 별도의 표를 받는데, 그 표를 나에게 주고, 아저씨는 트럭에서 있겠다는 것이다. 무전 여행이란게 참 민폐를 많이 끼친다. 지금생각보니 그렇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 히치하이킹으로 한바퀴를 돌았다. 그 당시에 기타를 들고 다녔는데 횟집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잠깐 와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기타를 현란하게 막치더니 나한테도 쳐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코드 몇개 쳤더니 "너는 기타 들고 다니지마라" 라고 얘기했다. 그러더니 자기 횟집 2층에서 밥먹고 가라고 해서 밥도 먹고 거기서 잠도 잤다. 


그 후로 제주를 갈 일이 없다가 문득 여행이 그리워진 무렵에 제주를 갔다. 2018년이었던것 같다. 해외 여행도 그다지 즐겁지 않아서였나? 계획없이 휴가를 써서였나. 아, 기억났다. 회사 선배가 제주 1인실 게스트 하우스 다녀온 이야기를 해줬는데,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었는데 그 모습이 그려져서 환상을 가졌던것 같다. 그래서 제주 1인실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해보니 이미 유명한 곳 - 특히 바닷가 근처는 모두 한달 전에 예약이 완료되었고, 급하게 예약하다보니 내륙쪽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다. 


1인실 게스트 하우스. 


1인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신림동 월 30짜리보다 작지만 나름 감성으로 푹신한 이불과 예쁘게 칠해놓은 페인트 벽. 그리고 방음이 하나도 안되었다. 과연 이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게스트 하우스에는 사랑채같은 로비가 있었고, 여기는 사람들이 각자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하는 공간이었다. 소심쟁이인 나는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썼던것 같다. 


늘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에서는 글이 잘 안써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주에서는 글이 술술 써지는게 아닌가? 그도 그럴것이 할게 없다. 혼자 있다보니 대화할 상대도 없어서 좋은 것을 먹고 보았을 때 표현할 곳이 없다보니 글을 썼다. 


그래서 18년의 제주는 글이 잘 써지는 공간으로 기억되었다. 가끔 생각정리를 하러 오기 좋은 곳. 


그리고 이후에 몇 번 제주를 왔다. 

한 번은 여자친구와, 한 번은 친구들과. 그리고 이번에 제주 반달살기를 시작했다. 반달살기라는 말이 거창하지만, 제주에 15일간 지낸다는 뜻이다. 지난주 목요일에 왔으니 벌써 온지 5일이 되었다. 특별히 계획없이 카페에서 하염없이 1인실을 검색하고 맛집을 검색하기도하고,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을 켜놓고 딴짓만 하고 있다. 사실 무슨 글을 써야겠다는 목적도 없다. 


생각 정리를 하기 좋은 시기이다. 

왜 그렇게 게임을 많이 했을까 생각을 해보면, 지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일 것이다. 게임을 하면서 뇌를 비운다. 현실에서 닥친 문제들은 게임을 한다고 해결이 되진 않는다. 잠시 잊혀질 뿐이다. 그렇다고 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잊는 선택을 한다. 제주. 이제 슬슬 쌓아놨던 문제들에 대해서 직면해야한다.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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