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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HDH Nov 27. 2021

디아블로 일기2

쌀먹 시대에 게임의 가치는 무엇일까? 

근래에 디아블로에만 빠져서 살았다. 꺠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디아블로를 했다. 정말 악마의 게임이다. 20년전 게임이 아직까지 재밌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디아블로는 거래 게임이다. 

언뜻보면 몬스터를 잡고 아이템을 파밍하는 게임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더 재밌는 것은 파밍한 아이템을 물물 교환하는 거래이다. 옛날 게임답게 거래 시스템이 아주 불편하다. 디아블로에는 화폐가 없다. 그래서 아이템의 가치를 일률적으로 매기기 어렵다. 현대의 사회에서는 물건의 가격을 돈으로 책정하기 때문에 계산이 어렵지 않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4100원, 빽다방 아메리카노는 2000원. 그러나 디아블로 세계에서는 물물교환을 해야한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기 위해서는 집에 있는 쌓여있는 스팸 1개랑 햇반 1개, 양반김 1개과 바꿀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게 알맞은 가격인지 알기 위해서는 쿠팡, 11번가, 아마존 등 여러개의 쇼핑 플랫폼에서 가격 비교를 해야한다. 그리고 이걸 거래 게시판에 올려야하는데, 글을 올린 후에 사람들이 댓글을 언제 다는지 일일이 확인해야한다. 당근 마켓에서 거래 약속을 잡듯이 게시판을 통해서 약속 장소를 잡는데, 이게 또 거지같다. 서버를 얼마나 거지같이 만들어놨는지 신사동 파출소 앞에서 만나요 하고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상대에게 연락이 온다. 자기가 신사동 파출소인데 왜 안나오냐고 묻는다. 나도 대답한다. “저도 파출소 앞인데요?”. 그렇다 디아블로는 유저들 몰래 서버를 2개로 나눠서 같은 파출소앞에 있지만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유저는 서버를 선택할 수 없다. 이렇다보니 안그래도 거지같은 거래 시스템이 최악으로 치닿는다. 당근 마켓도 이정도는 아니다. 


쌀먹 게임. 

한참 온라인 게임이 인기를 끌던 시절, 와우라는 게임에서 쌀먹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게임 내에서 채굴한 아이템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rpg게임 특성상 아이템이 중요한데, 아이템을 파밍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된다. 게임을 하는 유저는 대부분 아저씨들인데 이들은 낮 시간에 대부분 회사에서 돈을 벌고 저녁에 게임을 한다. 아저씨들은 게임을 재밌게 하고 싶은데 아이템이 없으니 성장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이템을 현실의 돈을 주고 산다. 이런 시스템이 구축되다보니 아이템만을 팔아도 웬만한 직장인만큼의 월급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낮에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쌀먹이 등장했다. 


디아블로도 쌀먹 게임. 

디아블로는 20년전에 나왔을 때만 해도 쌀먹 게임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발하지 않았고, 컴퓨터 보급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게임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내가 초6때 였으니 쌀먹과 거리가 멀었다. 아마 암암리에 아저씨들은 쌀먹을 했겠지만 이는 극히 일부였고, 아주 비싼 아이템에만 해당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흘렀고 정보에 대해서 모두가 쉽게 접근하고 실시간성이 보장되는 현대 사회이다. 그리고 아이템을 사고파는 거래 사이트들이 등장하면서 아이템을 사고파는 것이 어느정도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예전에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PC방에서 직접 만나서 아이템을 건네고 그 자리에서 현금을 내주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요즘은 보증 시스템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선입금을 하고 아이템을 받은 후 상호간 컨펌을 하는 체계가 생겼다. 


게다가 어린 시절 디아블로를 하던 10-20대들이 30-40대로 자라면서 당시에는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지만, 지금은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직장인이 되었다. 과거에 시간이 많았을 때 누렸던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싶은데, 회사에서 지쳐 돌아오면 게임을 1~2시간밖에 못하니 기대에 못미칠 따름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을 돈으로 산다. 아이템은 시간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쉽게 얻어진 아이템은 딱 그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원래 파밍을 통해서 아이템을 얻는 게임인데, 현실의 돈 10만원으로 아이템을 사고 사냥을 몇번 해보니 재미가 없다. 그렇게 아저씨들은 추억 팔이를 빠르게 소모한다. 


게임의 가치란 무엇일까? 

최근에 만난 사람들에게 디아블로에 대해서 설명하면 그게 왜 재밌냐고 물어본다. 이걸 명료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예를들면 집을 꾸미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 원룸에서 작게 시작해서 중고나라에서 전자렌지 만원에 사고, 통돌이 세탁기를 최저가에 구매한다. 그러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기존에 있던 전자제품을 팔고 TV도 사고 세탁기도 드럼 세탁기로 바꾸고, 더블 침대를 들여놓는다. 그러다 더 여유가 생기면 건조기도 사고 드레서도 사고 TV도 4k로 바꾼다. 그런데 가격은 올라갔지만 예전만큼 삶의 질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디아블로에서 아이템을 셋팅하는 것도 비슷하다. 어느 정도의 셋팅이 되면 사실 필드에서 사냥을 하는데는 큰 차이가 없다. 감성의 문제이다. 건조기가 없어도 빨래해서 손으로 탁탁 널면 되는 것처럼, 조금만 수고로우면 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한다. 게임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집꾸미기의 사이클이 짧고 직관적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만족감을 빠르게 충족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을 셋팅하고 나면 이 게임은 할게 없다. 그리곤 그 모든것을 팔고 떠난다. 새로운 게임을 찾는다. 그렇게하고 나면 남는 것은 게임 거래 사이트에서 벌었던 쌀먹 머니. 보통 한 달을 하면 40~50만원 정도를 번다. 그렇게 열심히 거래를 하고 파밍을 해도 남는게 50만원이라고 하면 허무하다. 그러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차이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게임을 하느냐? 그렇다면 수지가 안맞는다. 이미 유저는 게임을 하는 것에 즐거움을 소비 했다. 이미 댓가는 지불되었다. 돈으로 환산될 수 있기에,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 게임을 하고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하는 게임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 또다른 직장이다. 

거래를 하다보면 시세차익을 얻는 수단이 보인다. 정보가 모두에게 공평할 수 없고, 가치의 척도도 다르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 싸서 사서, 나중에 비싸게 되팔 수 있다. 이러한 되팔렘에 빠지게 되면 게임을 통해서 아이템을 파밍하는 것보다 차라리 초보를 등처먹는 것이 돈을 더 빠르게 모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와 유사하게 자동 사냥 봇, 맵핵 등 불법적인 요소를 넣으면 이보다 돈을 빨리 벌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면 이제 게임을 그만두어야할 때이다. 


게임의 가치란 무엇일까? 

스스로에 성장과 보상. 아이템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시대가된 지금. 게임의 가치는 50만원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제 게임을 접어야할 떄가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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