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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HDH Nov 27. 2021

디아블로 일기

디아블로를 켠 순간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요즘 디아블로가 유행이다. 디아블로2가 출시된지 20년, 블리자드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옛날 게임의 그래픽만 개선해서 옛 게임을 그대로 출시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당시에는 유희거리가 많지 않았고 게임의 퀄리티도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절 디아블로는 최고의 게임이었지만, 지금은 게임도 많이 발전을 했고 놀거리가 많아졌다. 20년전 게임에서 변한것은 그래픽밖에 없었다. 아파트로 따지자면 내부 인터리어만 그럴싸하게 했지만 그래도 20년된 구축이다. 요즘 새로 지은 아파트와 비교가 될리가 없다. 

출신 첫날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몰렸다. 게임에 진심이 아닌 사람들도 찍먹하기 위해서 오고, 컨텐츠를 뽑기 위해서 들어왔다. 원래 오픈빨이라는게 있다. 결국 서버는 터지고 첫날에는 제대로 게임을 한 사람이 없었다. 20년만에 해본 디아블로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이게 20년전 게임이 맞나 싶을정도로 완성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20년전으로 돌아갔다. 

20년전 나는 중학생이었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PC방에서 디아블로를 했다. 교회 친구 중에서 안형진이라는 애는 게임에 진심이었다. 집에 컴퓨터가 있어서 이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갔다. 그 당시 디아블로 CD가 4만원 정도 했으니, 초등학생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가격이었다. 그래서 게임을 할 시간보다는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간이 더 많았다. 나와 안형진은 게임에 대해서 계속 토론을 했다. 이 스킬은 마스터하기만 하면 세니까 이거부터 만땅을 찍어야 한다, 현재 아이템 셋팅에서는 저 스킬이 낫다.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다시 디아블로를 할 생각에 설레었다. 이러한 경험은 20년 후 내가 게임 유튜브를 하는데 영향을 끼쳤던것 같다. 

출시 둘쨋날 역시나 서버는 툭하면 터졌고 긴 기다림 끝에 접속을 한 운좋은 소수는 게임을 했다. 나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디아블로를 했다. 모두가 맨땅에서 같이 시작하는 시기라서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다같이 힘을 모아서 퀘스트를 진행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와 동년배 아저씨들은 죽어도 좋았다. 어려울수록 그것을 극복했을 때 그 퀘감은 더 높다. 초창기에는 이렇듯 x밥 싸움을 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일주일만 지나도 이미 만렙에 좋은 아이템으로 셋팅해서 이런 허접함을 볼 수 없고, 고수 한 명이 나머지 7명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노잼 구도가 생긴다. 이런 노잼 버스(고수가 밀어주는)를 운영하는 것이 시간 대비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디아블로는 게임 기획과는 상관없이 한국인들 특유의 효율 추구로 인해서 비약적인 속도로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꼼수가 널리 퍼져있다. 출시 첫주에는 이런 꼼수가 통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재밌었다. 

최고 난이도 보스까지 잡고 나니 할게 많다. 이제부터 게임이 시작된다. 이 게임은 보스를 처치하는게 목표가 아니라 끊임없는 앵벌이(아이템 파밍)로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해서 캐릭터를 강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사실 목표라고 말할순없다. 게임의 이유이다. 이제 내 첫캐릭터는 일종의 가장이 되어 나머지 캐릭터의 아이템을 수급해야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같은 필드를 돌면서 아이템을 파밍한다. 옆에서 얼핏 보기에는 똑같은 작업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보는 사람은 재미없다. 그렇지만 플레이하는 사람은 한 판 한 판이 룰렛 게임이다. 잭팟이 터졌을 때의 쾌감. 그것을 잊지 못해서 계속해서 룰렛을 돌린다. 

첫주에는 아이템이 바닥이기 때문에 어떤 아이템을 먹더라도 행복한 시기이다. 아이템을 먹으면 20년전 그 추억의 아이템들이 떠오른다. 내가 자리를 비운동안 이 게임도 많이 발전을 했고, 과거에는 지존템이라 불리던 것들이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는 쓰레기로 전락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 시절 구린 아이템을 먹으며 행복했던 내가 떠오르고, 지금 나도 그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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