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정담의 정원

8월의 농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by 무 한소

이번 여름은 휴가를 포기할까? 아님, 여러 일정들 자체를 포기해야 하나? 남편과 의논을 하며 고민 고민 후 소소하게 잠시 가까운 곳을 다녀오기로 했다. 코로나의 영향과 변화되는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이야 말로 너무나 그럴싸한 핑계다. 또 일상에 젖어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어느 날, 어느 시점부터 '강화' 가는 횟수를 서서히 줄여가고 있었다. 일상의 바쁨도 있었지만 맘의 중심 그리고 관심과 집중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계획과 그것의 실행으로 시작되었는지도.... 다만 지금은 예전처럼 맘이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다.

출발하기로 한 날 새벽부터 비가 쏟아질 듯 습도를 잔뜩 지닌 주변 공기가 답답했다. 그렇지만 우린 계획대로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움직이기로 했다. 주말을 이용해서 소박한 여름휴가를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출발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천으로 가는 길에 미리 연락을 드려 옷을 입고 준비를 할 시간을 드렸다. 그리고 시 부모님 댁에 도착한 후 남편이 차를 대기하고 있을 동안에 딸과 내가 부모님을 모시러 21층으로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직 딸과 둘이서만 마주하며 여름방학을 이용해 염색을 한 중2 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요즘의 모습이 표정에 그대로 그려진다. 딸아이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해맑다. 콧노래까지 흥얼댄다.


아이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이 21층에 도착했다. 문을 열며 동시에 인사를 드렸다. 뭔가 두 분이 함께 이루고 있는 공기가 여행 출발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아버님께서는 침대에 누워 계셨다. 말씀을 들어보니 아버님께서 잘 씻고 그 후에 잠시 몸이 안 좋다고 누우셨다고 했다. 아버님께 강화에 가실 수 있겠냐고 가자며 재차 말씀드렸더니 몸살이 난 듯 팔다리가 다 아프다고 만약 가게 된다면 몸이 더 힘들어질 거 같다고 하셨다. 다시 한번 의사를 확실하게 밝히셨다.


두 분의 삶을 돌아보면 꼼꼼하지만 좀 느리고, 책임감은 강하지만 융통성이 부족하신 아버님께서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을 많이 힘들어하신다. 성격 탓일까? 상대적으로 어머님께서는 순발력이 넘치고 빠르지만 대부분의 일이 서둘러 처리되는 부분이 많았다. 결과는 곧 드러나기도 했고 책임감보다는 융통성이 뛰어났다. 그런 성격에 당당함까지 타고나셨다. 두 분은 참 다르지만 조화롭게 잘 살아오셨다. 두 분의 성향이야말로 평행선 관계지만 서로 마주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천생연분이시다.


이번에는 아버님께서 완고하게 고집을 하시며 절대 못 가시겠다고 했고 어머님께서는 벌써 마음은 강화에 가 계셨지만 현실을 힘들고 어렵게 받아들이셨다. 두 분을 남겨둔 채 인천에서 강화로 가는 길은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두 분을 두고 가는 아픈 맘의 무게까지가 더해져 가는 길이 훨씬 힘들고 멀게 느껴졌다. 하늘은 잔뜩 흐려서 먹구름이 수를 놓은 게 아니라 가는 내내 하늘 전체에 물과 섞인 물감으로 그려진 탁한 잿빛을 그려냈다. 휴가를 불편한 맘으로 보내게 되는 남편과 나의 맘을 대신하듯 적은 양의 비가 오락가락하며 습도를 더하여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잔여 감정을 가지고 도착한 강화[정담]에서


[정담]은 J께서 햇수로 4년 전에 계획하고 설계하셔서 지은 펜션이다. 우린 거기서 많은 활동을 했다. 농사를 짓는 규모도 해마다 커져서 지금은 1000평 이상 규모의 농사를 지으신다. 항상 말씀하시길 그곳에서 힐링을 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현실은 그 규모의 농사를 지으려면 힐링이 아니라 몸이 혹사되는 건 아닐까라는 염려가 먼저 든다.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누군가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로 가는 것을 미루기도 하고 갈 때의 맘은 늘 나를 복잡하게 하지만 도착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여러 가지를 살피다 보면 이상하게 그전까지 불편했던 맘이 편안해지며 치유가 된다.


[정담]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지낼 수 있으며 끌림으로 자연을 자꾸 바라보게 된다. 안정된 맘을 들여다보며 순간 자연 속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 속에서 '수'를 읊게 되고, 우리의 삶에 자연이 들어오는지 평온하고 행복이 보이기 시작한다.


2~3달 만에 다시 찾아간 그곳은 많이 변해 있었다. 형형색색의 농작물들은 각각 그것들만의 질서를 만들었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리디아의 정원을 연상케 했다. 열정적인 오케스트라의 향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무대와 같은 정원을 바라본다. 물론 농작물들 각각을 소개해 주기도 하지만 그 속에 그것들이 이루고 있는 밸런스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 질서는 건강함을 전달해 주는 거 같았다. 자연에서는 질서가 기본이겠지만 내 눈에 띈 건 그 질서보다는 그것들과 주변이 이루는 조화였다. 조화로움에서 빛이 나고 합주가 한창인 정원을 그려냈다. 그 한가운데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8월의 농부가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는 나를 그 조화로움에 완전히 끌어들여 그곳에 참여하게 하고 조화로움이 차고 넘치니 서서히 긍정적이고 거대한 에너지가 전달된다.


배려하는 맘이 깊으신 가족들께서는 규림이와 나를 위해서 수확을 끝낼 수 있었던 블루베리를 남겨 두셨다. 가끔씩 약을 올리며 내리는 비로 습도는 최고의 불쾌지수를 찍었지만 가족들의 맘 씀을 통해 자연의 깊은 맛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는 블루베리를 시작으로 애플수박( 대롱 매달려서 수학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인 대칭성과 곡선의 완벽한 조화로 자신의 고귀함을 뿜어낸다), 그리고 오이와 참외, 호박 등을 체험해가며 조금씩 수확했다. 단호박도 참 귀엽고 예쁘게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고 가지는 독특한 빛깔과 좀 더 귀여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색색의 고추는 일주일을 기다려 좀 더 성장한 후 수확을 하신다고.


자연과 함께하고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 '정담'은 여전히 깨달음을 주었다. 자연 속에 위치해 있는 절대 깨어지지 않는 질서,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농작물에게는 사랑과 그 속에서의 시간이 느껴진다. 질서와 조화 그리고 그것을 포괄하는 사랑까지 긴 시간 이루어진 그 관계는 마치 일차 함수 식의 양의 기울기를 그대로 떠오르게 했다. 아주 완만하지만 긴 시간 동안의 변화는 사랑에 의한 기다림이 아닐까. 시간과 사랑, 신뢰의 관계. 벅찬 맘으로 농작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시간 속의 사랑은 그것들의 외형까지도 예쁘고 사랑스럽게 포장해 주었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의 맘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또한 그것들을 바라보는 눈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이 그려둔 일차함수의 기울기를 따라 천천히 흐른다.